최고의 찬사부터 엄청난 비난까지, ‘냉장고’가 지나온 1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수미상관. 2015년 이 코너의 마지막 원고에 JTBC <냉장고를 부탁해>보다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없을 듯하다. 2014년 말 조용히 시작한 프로그램은 초반 6회 차 정도까지는 요리에 관심이 있거나 아는 사람만 재미를 아는 종편의 마이너 예능이었다. 그러나 셰프들의 캐릭터가 다져지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5년 방송가에 쿡방 트렌드를 몰고 왔다. 공중파 예능까지 점령한 스타셰프를 탄생시키고 일상과 결부한 다양한 콘텐츠가 예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MBC 예능 <마리텔>과 함께 2015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프로그램으로 꼽는 이유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신선했던 것은 기존의 요리방송과 토크쇼를 연결한 다음 일상성과 결부했다는 데 있다. 레시피쇼랑 셰프들의 면면은 올리브tv 채널에서 건너왔고, <아빠 어디가>에서 어설픈 요리 실력을 선보인 김성주와 <무도>와 <우결>을 통해 식성을 공개했던 정형돈은 공중파 예능에서 활약하던 예능선수였다. 일상성 또한 관찰형 예능의 시대인 만큼 메인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는 애매했다.

그런데 이 예능은 기존에 가진 재료로 신데렐라 같은 마법을 부렸다. 집에 있는 그저 그런 재료들이 일류 셰프를 만나면 어떤 요리가 나올 것이냐는 궁금증은 일상과 레시피쇼의 결합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대결시간인 15분과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이라는 제약과 전제는 시청자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수많은 요리 정보들이 나오고, 홍석천의 렛잇컵 등 따라 하기 쉬운 레시피들이 백종원이 득세하기 전까지 요리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의 훌륭한 주 교재로 쓰였다.



스포츠 중계 형식을 도입한 해설과 대결구도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눈요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레시피쇼가 설명하듯이 정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면, <냉장고를 부탁해>는 일종의 쇼였다. 셰프들의 개성과 캐릭터의 면면이 부각되었고 허세 최현석 셰프와 방송인이 된 김풍 작가는 이 쇼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또한 정형돈과 김성주의 입담은 그 어떤 토크쇼보다 찰진 재미를 뽑아냈다. 거기다 실제 집에서 가져온 냉장고라는 소재가 있으니 스타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 어떤 토크 콘셉트보다 잘 엿볼 수 있었다. 에피소드나 준비해온 개인기는 필요 없었다.

그러면서 약 3개월 만에 요리 정보와 신선한 인물과 웃음으로 최전성기를 열어갔다. 이때부터 제작진은 지속가능성이란 차원에서 고민이 많았던 듯하다. 그즈음 맹기용 셰프 기용과 관련해 시청자들과 마찰을 빚으며 대결구도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관심이 증폭돼 5%대를 훌쩍 상회하는 JTBC 대표 프로그램으로 우뚝 섰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중 밀착형 쇼의 매력을 상당부분 잃었다.



논란을 딛고 선 <냉장고를 부탁해>는 일상성이 사라졌다. 시청자와 밀착한 정서적 교류가 생명이었는데 이 지점에서 상처를 입었고 ‘트러블을 부탁해’라는 조롱이 등장할 만큼 초반기 그냥 습격당하듯 출연하던 게스트들도 자신의 살림과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셰프들도 회차가 거듭될수록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이 아니라 아무도 따라 하기 힘든 복잡한 레시피에 도전하게 됐다. 영민한 제작진은 새로운 셰프들을 투입해 이런 상황들을 개선해보려고 했지만 방송에 익숙한 오세득, 이찬오 셰프를 제외하곤 중반 이후 합류한 셰프들은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올해 마지막 대결이었던 박진희 편에서는 그나마 따라 하기 쉬운 요리도 하고, 사는 모습을 느껴볼 기회가 있었다. 친환경적인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은 꾸밈없는 낡은 냉장고에서부터 잘 드러났다. 하지만 쿡방 열풍의 진원지였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일상성 감소를 셰프들의 퍼포먼스로 메우고 있는 흐름을 극복하긴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정형돈의 이탈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상성의 감소와 셰프 캐릭터의 소진, 정형돈의 이탈은 2016년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망을 2015년의 성과에 비하면 초라할 만큼 낮춰 잡게 하는 요인이다.



1년 만에 최고의 찬사와 엄청난 비난까지 직면하고 바닥에서 예능 트렌드의 최전선으로 나서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지나온 1년은 사실 오늘날 예능이 얼마나 거칠고 급변하는 길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준다. 성공하려면 시청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접점을 이뤄야 한다는 팁을 알려줬지만, 1년 만에 질리지 않기라는 또 다른 난제와 결투 중이다. 어차피 올리브tv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영입하는 탓에 구세주처럼 등장할 새로운 스타셰프의 탄생을 기다리는 건 확률 높은 게임이 아니다.

일상성의 회복일까, 아니면 그보다는 더 화려하고 보는 재미가 있는 요리의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 아무래도 그 선택이, 내년 <냉장고를 부탁해>의 성패를 가르는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여론을 보면 일상성 회복이 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쿡방도 진화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예능, 소재주의 예능에서 늘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수명은 더욱 짧아졌다. 콘텐츠 예능의 시대를 열어젖힌 <냉장고를 부탁해>는 다음 숙제를 안고 내년을 맞이하게 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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