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여성 동료 영화인에 대한 게으른 비난을 멈춰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필자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분노로 달아오르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다. 영화잡지 <매거진 M>에 실린 ‘2015 한국영화 여성들, 안녕하십니까’(http://durl.me/b2wkgx)인데 직접 읽어 보면 알겠지만 내용이나 기획은 준수하기 짝이 없다. 올해 비교적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들을 하나하나 보고 벡델 테스트와 마코 모리 테스트를 했고, 여성 캐릭터의 유형을 분류하고 분석했으며, 참여한 스태프의 성별 비율을 계산했다. 이 정도면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얼마나 비정상인 빈궁함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트위터에 불길을 당기는 전 전체 기사가 아니라 눈에 뜨이는 짧은 인용구다. 이 기사에서 불똥을 튀겼던 건 기사 맨 뒤에 수록된 여성 프로듀서와의 인터뷰 일부이다.

[B ‘매드맥스’는 이야기·캐릭터·액션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영화였다. 국내에서 만든다고 하면… 어떤 배우가 샤를리즈 테론처럼 얼굴 전체에 검댕을 묻히고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까.]

어떤 상황과 사람들이 이런 대답을 유발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무심하게 던지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일단 샤를리즈 테론이 눈가에 칠한 검댕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미용 분장이다. 배우가 개고생하고 더러워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기피대상이라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둘째, ‘험한 꼴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모든 한국 여자배우들’이라는 이미지는 같은 기사의 통계에 의해 이미 부서졌다. 올해는 유달리 복수극 영화가 많아서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오로지 남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기 위해 고문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카메라 앞에서 그 끔찍한 일들을 겪었던 사람들이 과연 퓨리오사와 같은 캐릭터를 거부했을까? 그건 정말 이상한 상상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검은 사제들>의 영신 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보았던 배우들 중 삭발을 두려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오히려 여자배우들에게 온갖 일을 다 시킬 수 있는 시기이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역이 없기 때문에 배역을 위한 투쟁심이 극대화된 때라는 얘기다.

세째, 험한 꼴에는 종류가 있다. 퓨리오사와 샤를리즈 테론에게 떨어진 역경은 어떤 의미로 보아도 긍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극한의 여배우’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종류인지 생각해보자. 답의 일부는 이미 위에 나와 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캐릭터에 대한 상상력이 그 정도라면 이게 과연 배우들의 잘못일까? 그들이 내민 캐릭터나 역할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인터뷰 나머지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기사는 여성 스태프의 활용이 얼마나 미진한지 보여주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남녀차별이 없어졌다고 선언한다. 자랑스럽게 내민 성과도 이 관점에선 어색하기 그지없다. <베테랑>의 진경 캐릭터에 만족하기 전에 그 캐릭터에게 준 명품 어쩌고 대사가 얼마나 어이없을 정도로 촌스러웠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직책도, 이름도 없이 영화 끝날 때까지 그냥 ‘미스 봉’으로 불렸던 장윤주 캐릭터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사람들은 여성 영화인들에게 여성 동료들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기대한다. 그건 경험을 통해 배운 무언가여서가 아니라 마땅한 당위이기 때문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명예남성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모르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고백이지 애꿎은 여성 동료에 대한 게으른 비난이 아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검은 사제들><매드맥스:분노의 도로><베테랑>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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