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있어요’ 최진언과 SK 최태원의 닮은 듯 다른 로맨틱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해 말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모든 막장드라마의 요소를 두루 갖춘 남자주인공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의 재벌 2세 불륜남 커밍아웃 사건은 무언가 아리송하면서도 희한하다. 그것도 성경책을 들고 교도소를 나섰던 그가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내연녀를 공개하다니 말이다.

이 희대의 코믹하고 어이없는 재벌남의 행동은 김순옥 월드의 정교빈(변우빈)이 보여줄 법하거나 임성한 월드에서 뜬금없이 등장할 법한 독특한 사건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걸 보면 드라마 속 우스꽝스러운 재벌가의 모습은 나름 리얼리티가 살아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대중들의 생각과는 달리 본인의 캐릭터를 코믹으로 잡은 것 같지는 않다. 추측하건데 그는 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보다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SBS 드라마 <애인 있어요>를 즐겨본 건 아닐까? 더불어 그는 <아내의 유혹>의 정교빈보다는 <애인 있어요>의 최진언(지진희)으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둘 다 아내를 버렸지만 전자는 코믹에 악한이요, 후자는 로맨티스트로 그려진다. 더구나 성도 똑같고 마지막 글자도 ‘원’과 ‘언’으로 나름 비슷한 글자이니 말이다.

더구나 그가 커밍아웃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편지의 문장들을 나름 로맨틱하고 우아한 구석이 있다. 물론 그가 직접 썼다기보다는 홍보실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려 깊게 쓴 편지일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최태원이 공개한 편지의 문장이 아무리 고급지다해도 현재 여론의 추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커밍아웃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또한 최태원은 안타깝게도 <애인 있어요>의 초반만을 시청했는지도 모르겠다. 내연녀에게 모든 걸 던진 최태원과 달리 최진언은 결국 아내 외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남자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니까.



하여간에 SBS 주말드라마 <애인 있어요>의 재벌 2세 최진언을 연기하는 지진희는 로맨틱한 불륜남을 꿈꾸던 최태원 회장과는 달리 지금까지는 꽤나 성공적이다. <애인 있어요>는 어쩌면 지진희의 재발견에 가까운 작품이기도하다. 여주인공 도해강과 도해강의 동생 독고용기 1인2역을 소화하는 김현주야 이미 청춘스타를 지나 각종 주말드라마를 통해 깍쟁이처럼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알려진 지 오래다. 하지만 배우 지진희의 경우는 MBC <대장금> 이후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를 만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애인 있어요>의 최진언은 사실 딱 욕먹기 쉬운 캐릭터다. 아버지에게 “저 사람(아내) 치워주세요.”라고 말하는 남자주인공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나쁜 남자주인공이 사랑한 여자는 오직 아내뿐이고 결국 아내에게 돌아오는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야 한다는 데 있다. 그 과정이 설득력을 지니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한번 찍힌 남자주인공이 뜬금없이 멋진 남자로 변한들 그건 코믹한 변신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인 있어요>의 지진희는 최진언을 통해 이 과정의 감정변화를 현실감 있으면서도 달콤하게 그려낼 줄 안다. 거기에는 과장된 연기나 쓸데없이 매력적인 미소는 없다. 그는 한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의 가식 없는 미소와 눈빛, 눈물을 머금을 줄 안다. 그런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혹은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 또한 제대로 담을 줄 안다.



“해강아…… 해강아…… 여보.”

그리고 지진희의 진솔한 연애감정 연기는 상대 여배우의 감정연기에도 힘을 실어준다. <줄리엣의 남자>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 지진희의 장점은 거기에 있는 것도 같다. 지진희는 줄리엣과 함께 불타오르는 로미오는 아니다. 하지만 줄리엣의 옆에서 그녀를 돋보이게 만드는 기사 같은 남자다.

그렇기에 수많은 남자배우들이 로맨스물에서 여배우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드는 것과 달리 지진희는 여배우와 공존의 감정이 있는 따스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지진희의 잘생겼지만 예쁘장하지 않은 외모와, 딱딱하고 각진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부드러운 표정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저음이지만 포근한 음성은 그런 공간에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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