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는 어떻게 ‘무도’ 골수팬들에게 인증도장을 받아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08년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와 2009년 ‘여드름 브레이크’로 시작된 추격전들은 MBC 예능 <무한도전>에 많은 것을 남겼다. <무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명수와 노홍철의 캐릭터를 각인시켰고,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예능이 일상의 거리로 나오면서 시청자와 가까워졌고, 그 결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간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가진 예능을 경험하게 했다.

연말연시에, 무려 3주간이나 편성된 ‘공개수배’ 특집 역시 많은 것을 남겼다. 2014년 여름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추격전의 긴박한 호흡에 한 해 동안 무성했던 위기설과 멤버 복귀설에 대한 여론이 어느 정도 희석됐다. 멤버들의 활약에 만족한다면 당연히 사그라들 수밖에 없는 이슈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특집의 가장 큰 수확은 광희의 자리매김이다. 지난해 가장 큰 이벤트이자 변화였던 식스맨 광희가 주인공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면서 깐깐한 시어머니 같던 일부 시청자들도 이제는 인정의 박수를 보내게 됐다.

첫 추격전에 나선 광희는 그간의 하이톤의 여성스럽고 경박한 막내가 아니었다. 경험이 적다보니 휴대폰 위치추적 등의 흐름은 다소 늦게 파악했지만 예능 방송 촬영을 임하는 것 이상으로 쫓기는 상황에 진지하게 몰입했다. 다른 멤버들이 경찰의 끄나풀이 되어 예능을 위한 재미를 마련할 때 광희는 진짜 도망자가 되어 영화 같은 긴장감을 만들었다.

실제로 기존 추격전에선 잘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나왔다. 모든 것이 방송 촬영을 위한 것임에도 방송분량 걱정은 접어치우고 1시간 이상씩 숨기를 반복하고, 카메라를 버리고 몇 번이나 진짜로 도망을 갔다. 도랑을 냅다 뛰던 장면이 하이라이트인 이유는 예능 방송이란 경계를 넘어선 리얼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광희의 필사적인 탈주는 자칫 예능의 범주에 머물 뻔한 추격전을 살려냈다.



혼자서 방송 분량 생산을 해내지 못할 것이란 염려도 가뿐히 넘어섰다. 알아서 옷을 갈아입고, 맞은편 건물에 올라가 경계 태세를 갖췄으며, 주변의 조력을 이끌어내 체포 상황에 염두에 둔 대역까지 마련했다. 정준하가 최근 멤버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박명수가 웃음사망꾼 모드로 다시 <무도>의 스트라이커로 나서고 있지만, 갈수록 유재석에게 집중되는 스토리라인과 지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이때, 광희는 진지함과 열정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광희를 주인공으로 풀어간 이번 공개수배 추격전은 리얼버라이어티의 묘미를 오랜만에 느끼게 했다.

추격전에서 광희가 인정받은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무한도전>은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다. <무도>의 두터운 팬덤도 시청자들은 캐릭터의 성장과정과 함께해왔다는 연대의식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은 캐릭터의 성장이 멈추고, 유지보수 단계에 꽤 오랜 시간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캐릭터쇼라는 본질로 돌아가 재충전하고 전열을 정비할 때였다. 기존 캐릭터나 고정된 관계망을 뒤흔들 변화가 필요할 때였다. 캐릭터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우정이 무정형의 예능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고 초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때 광희는 캐릭터의 면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추격전에서 활약하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에게 인증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추격전을 통해 <무한도전>은 자신들의 클래식한 매력을 뽐내고, 유재석의 건재를 확인했으며, 비로소 광희는 멤버의 자격 논란이란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다. 광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번 추격전은 제보에 대한 시민의식을 고취하는 공익적 메시지와 함께 시청자들이 새롭게 성장하는 캐릭터를 주목하고 호감을 갖게 된 일석이조의 소중한 결과를 남긴 것이다.

그동안 조금은 혹독한 루키 시즌을 견뎌온 광희다. 이번 추격전을 통해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지만 그를 숨겨두고, 그를 붙잡아주지 않은(?) 부산 시민과 형사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아량이 아직은 필요한 때다. 몇 수 위의 경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멤버들 속으로 몇 발 늦게 들어온 만큼 기다림과 응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보답하듯 광희는 생각보다 빨리, 응답하기 시작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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