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외화 더빙 문화를 살리기 위한 진짜 해답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BBC에서 제작한 6부작 미니 시리즈 <전쟁과 평화>가 지난주부터 KBS2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이 작품의 방영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본이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고 음성다중으로 한국어 더빙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타임머신 기능으로 녹화를 해서 두 버전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더빙 작업은 나쁘지 않았지만 필자는 그래도 배우들의 원래 목소리 연기를 선호한다. 영어처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경우, 자막으로 보면 번역자의 실수나 잘못된 고집, 검열을 뚫고 원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텍스트가 동시에 두 개 제공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러시아어 원작을 영어권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이니 영어판 자체가 일종의 더빙이라는 재미있는 주장도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극 대부분이 그 부류에 들어갈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더빙을 선호한다. 더빙은 자막이 압축할 수밖에 없는 정보를 더 풍성하게 전달한다. 자막 때문에 집중력이 분산되는 일도 없고 글자 때문에 화면이 가려지는 일도 없다. 199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로 익숙한 배우들 중엔 오히려 더빙 성우의 목소리가 더 친근한 경우도 있다. <엑스 파일>의 스컬리였고 <전쟁과 평화>에도 조연으로 등장하는 질리언 앤더슨의 경우가 그렇다. 단지 이 경우 미국식과 영국식 억양을 모두 구사하는 이 배우의 특성이 날아가버리긴 하지만.

KBS판 <전쟁과 평화>는 자막과 더빙을 모두 제공해서 양쪽의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 단지 여기서는 지상파 방송의 기술적 뻑뻑함이 일차적인 장애가 된다. 원래 목소리와 자막을 택한 시청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음성다중 기능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위치에 있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며 더빙을 택했다고 해도 밑에 깔리는 자막이 거슬리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를 볼 때도 영어나 한국어 자막을 까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특별히 불편한 게 없었지만 모두에게 내 입장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더빙은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는 분명 그렇다. 외화 더빙 방송은 맥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해외 드라마도 거의 방영되지 않는다. 더빙 자체가 하나의 문화에 속한 예술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아쉬울 수 있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서 했던 <비긴 어게인>의 더빙 도전은 이런 아쉬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선택에 아쉬워했던 시청자들 대부분은 여기서 더빙 문화에 대한 홀대를 보았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요새는 극장에서 더빙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일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극장판 대부분은 더빙으로 상영되고 극장판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더빙과 자막을 선택할 수 있다. 어린이 관객들의 인기가 높은 경우 자막판을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질 때가 있는데, 최근에 개봉된 <스누피 더 무비>의 경우가 그랬다. 얼마 전에는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의 더빙판이 상영되기도 했는데, 이 버전은 자막판의 거슬리는 문제점, 그러니까 레이아가 한 솔로에게 일방적으로 존대하는 번역을 수정해서 팬들의 칭찬을 받았다. daring을 ‘총애하는’이라고 번역한 오역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답은 소비자에게 공평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에 있다. DVD, 블루레이는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VOD와 케이블 재방송은 시청자들에게 비교적 공정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쟁과 평화>의 음성다중 시도 역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단지 양쪽 시청자들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킬만한 기술적 유연함이 없었을 뿐이다. 그 기술적 문제의 해결이야 말로 외화 더빙 문화 유지를 위한 진짜 답일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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