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잊지 마시라 시청자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해 여름 이후 SBS 수목드라마는 중간에 잠시 쉬었던 <마을>을 제외하면 신흥이야기꾼들의 이어달리기 같다. <가면>에서부터 시작된 이 전략은 <용팔이>를 지나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바통을 넘겼다.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이라면 우선 달린다는 데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개연성이나 인물 사이의 감정선은 장애물처럼 휙휙 뛰어 넘기 일쑤다. 시청자들이 어이없어하는 그 순간에도 드라마는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기에 주인공 특히 남자주인공들은 개고생이 심하다.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얻어맞고, 다시 달린다.

하지만 최근에 달리고 있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과거 두 작품과 달리 긴장의 포인트를 쿡쿡 찍어낼 줄 안다. 달리다가 멈칫하고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더구나 똑같이 이기적인 재벌이 등장하고 음모의 희생양이 등장하지만 <리멤버>는 최소한 인물들의 머릿속에 생각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관과 각자 생각하는 정의로움이 있다. 거기다가 억울하게 살인마의 누명을 쓴 아버지를 구하려고 변호사가 된 아들 이야기는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줄거리다.

하지만 시간은 잘 가는 드라마 <리멤버>는 회가 거듭될수록 시큰둥해지는 면이 있다. <리멤버>에서 주인공 서진우(유승호)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반대로 서진우는 과잉기억증후군이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한다. 시청자는 알츠하이머도 과잉기억증후군도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다들 기억하고 있다. <리멤버>에서 순간순간 등장하는 설정이나 사건들을.



<리멤버>는 관습적인 장르에 너무 쉽게 기댄다. 법정물, 멜로물, 추리물에서 흥미진진할 법한 익숙한 장면들을 모두 품는다. 아마 많은 시청자들은 영화 <베테랑>에서부터 영화 <내부자들>, 드라마 <투윅스>나 <개과천선> 등등 수많은 성공작들의 순간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볼 때 <리멤버>가 기억 속의 작품들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수많은 장르를 복합적으로 엮어내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하지만 <리멤버>는 그 사이사이 빈틈을 쉽게 드러낸다. <리멤버>가 두 시간짜리 영화 시나리오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에 어울리게 좀 더 쫀득쫀득한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관객들은 이야기 사이사이의 허점들을 금방 잊고 지나칠 수도 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 안에서 관객들은 안방보다 쉽게 이야기의 포로가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16부작 이상의 미니시리즈에서 사건의 허술한 인과관계는 금방 도드라진다. 더구나 <리멤버>는 지극히 시나리오적인 드라마이면서도 정작 사건의 해결은 치밀한 전략이 아닌 드라마적인 감정 호소에 기댄다. 휴머니즘을 자극하고 인간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 방법이 빠른 템포를 지닌 장르물에 적합한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최근 회차에서 서진우가 보여준 일호그룹의 재벌2세 남규만(남궁민)에 대한 복수 장면 또한 아쉬움이 많다. 언론사에 제보해 기자회견을 재청한 서진우는 기자들이 있는 장소와 다른 곳에서 홀로 기자회견을 한다.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일호그룹의 비자금 내역을 폭로할 작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변호사 박동호(박성웅) 일당이 들이닥치면서 이 기자회견 시도는 물거품이 된다. 긴장감 넘치고 안타까운 장면일 법하지만 정작 이 폭로신은 그저 그렇다. 너무나 익숙하고 낡은 방식의 장면전환이기 때문이다. 결국 끌려가는 서진우를 보며 속이 터지는 건 시청자들의 몫이다.

남들보다 기억력이 수십 배는 좋아 내 머릿속의 동영상을 스스로 볼 줄 아는 주인공이 스마트폰이 있고 유튜브가 있는 시대에 왜 동영상을 혼자 찍지를 못하니, 찍지를 못해!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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