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와 박진영, 정작 피해자인데도 손가락질 받는 까닭


제14강. 선례 [先例] [설-]


[명사]
1. 이전에 있던 사례
2. [법률] 이미 있었던 어떤 판례나 상급 법원의 판결이 그와 비슷한 다른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앞선 판결을 이르는 말
3. 한번 잘못된 선례를 만들면 돌이키기 어렵겠죠?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제작진이 준비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었다가 졸지에 대만독립론자인지 아닌지 대답하라는 질문을 받게 된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는 1999년생이다. 올해 만 16세의 그에게 대륙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은 폭력에 가까웠고,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 측에서 두 차례 공식 입장을 발표했지만 인터넷 상의 불매운동은 가라앉지 않았다.

JYP에 소속된 다른 아티스트들의 중국 관련 행사들이 취소되는 사태가 터지자 결국 쯔위는 지난 15일 직접 ‘양안해협은 하나이며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말하는 사과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어찌나 급하게 찍었는지 경악스러울 정도로 조악한 화질로 업로드 된 동영상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많은 이들이 윤리적인 층위에서 박진영과 JYP를 비판했다. 쯔위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당할 때, 박진영은 쯔위를 보호하는 대신 “부모님을 대신해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며 있지도 않은 잘못을 인정하는 쪽을 택했으니까. 쯔위의 사과 동영상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흡사 인질극 동영상을 보는 기분”이라는 비아냥을 샀고, 심지어는 중국 본토에서조차 돈 때문에 소속 아티스트에서 몹쓸 짓을 시킨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홍콩이나 대만에서의 반응은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명백한 윤리적 파산에 필자가 따로 덧붙일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현실적으로 중국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별 다른 옵션이 없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마치 “현실 불가능한 이상적인 해법”과 “현실 가능한 나쁜 해법” 두 가지 답만이 존재한다는 듯한 이 말은, 말을 꺼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모든 윤리적 비판을 무력화한다.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것은 국가주의적 성향이 유독 큰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홍콩의 우산 시위를 지지하거나 대만 관련 발언을 한 연예인들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비판은 매우 격렬해서, 엄청난 거물급이 아닌 이상에는 해당 연예인의 중국 본토 내 활동에 유무형의 제약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분위기 상상이 어려우면 수 년 전의 한국을 돌이켜 보자. 카라가 일본 방송에서 ‘김치’를 ‘기무치’로 발음했다가 매국노 취급을 당했던 사례나, 수원 삼성에 정대세 선수가 입단했을 때 일부 극우 인사들이 대한민국 국적으로 북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했던 이력을 들어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재범이 과거 연습생 신분으로 개인 SNS에 올린 글 때문에 ‘한국 비하 논란’을 겪고 인터넷 일각에서 전개된 재범 퇴출 서명운동에 등 떠밀려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일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이슈에 의도치 않게 휘말렸을 때 가장 현실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JYP가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일까? 아니다. 필자는 그럼에도 여전히 정답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고 믿는다. “문화와 정치는 각각 독립된 영역의 문제이고, 우리 회사는 문화로 상호 교류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뿐이다. 소속 아티스트가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해석에 대해서는 거부한다.” 1차와 2차 입장문에서 JYP가 취했던 태도를 계속 간곡하게 견지하며 설득 했어야 했단 이야기다. 단순히 ‘소속사는 소속 아티스트를 지켜줘야 한다’는 윤리적인 층위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기적으로 닥쳐오는 막대한 손해를 감안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따졌을 때는 이 쪽이 차라리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온갖 역사적 은원 관계와 정치 역학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다. 한중일 3국 사이의 역사 문제, 영토 영유권 문제, 남북한 간의 문제와 양안간의 정통성 문제, 한미일 군사 동맹과 팽창하는 중국의 문제, 중국과 홍콩의 일국양제 문제 등 온갖 첨예한 갈등이 겹겹이 쌓여 있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을 기반으로 국제적 비즈니스를 하면서 정치적인 이슈를 다 피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JYP는 한 차례 이런 이슈에 휘말리자, 인정할 이유가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을 회사가 아닌 아티스트 개인이 짊어지게 만드는 선례를 만들어버렸다. 어떤 일이든 선례를 남긴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인데, 향후 비슷한 사례가 터졌을 때 해당 선례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 정착된 관례를 나중에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한 차례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소속 아티스트가 양안관계에 대한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았고, 그 강압에 굴복해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 입장을 밝히는 지점까지 왔다. 한번 이런 선례를 만드는 순간, 두 번째로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어진다.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인 황안은 중국과 대만 내에서도 평이 좋지 않은 트러블메이커로, 커리어의 위기가 올 때마다 남의 사생활이나 약점을 건드리며 이슈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전략을 즐겨 썼던 사람이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단호하게 “아티스트가 의도하지 않은 일체의 정치적 과잉해석을 거부한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등 떠밀려 엎드린 탓에, JYP는 이런 사람들에게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하는 회사’라는 파란 불을 켜준 셈이다. 중국 시장이 압력을 주면 주는 대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종속적인 존재임을 전 세계에 인정해버린 꼴인 것이다.

만약 황안이나 혹은 그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또 다른 누군가가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들에게 중국과 대만, 일본이 각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댜오위다오 / 댜오위타이 / 센카쿠 열도에 대한 입장을 물어본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잭슨 왕에게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면, 한중 양국 사이에 이어도 문제가 새삼스레 불거지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그 때에도 중화권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속 아티스트에게 특정 정치적 입장을 발표하라고 할 것인가?

다국적 연예인들이 대거 소속된 JYP가 고작 이 수준으로 리스크를 관리한다면 어떤 파트너가 JYP를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를 하는 안정적인 파트너라고 생각하겠는가? 만약 그 때 가서라도 단호하게 대응한다면 그나마 다행인 일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가지 질문은 끊임없이 JYP를 따라다닐 것이다. “쯔위 때와 대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이럴 거면 쯔위 때에도 아티스트를 지켜줄 수 있지 않았나?”



물론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중국과 대만에 있을 것이다. 중국의 관영지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한국 기업이 성장하는 중국경제의 과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대만 문제를 포함한 중국의 주권, 영토문제를 존중해주고 중국 네티즌의 인내심에 도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가, 쯔위의 사과 동영상이 올라온 뒤엔 짐짓 점잔을 빼며 쯔위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을 무시하고 용감하게 중국의 빛이 돼라”고 당부했다.

이쯤 하면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총선 승리가 예상되던 대만의 야당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은 쯔위의 사과동영상을 보고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압승’을 해버렸으며, 대만 네티즌들 사이에선 “나는 대만인이며 누구에게도 대만인이라는 이유로 사과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업로드 하는 일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정치적인 요구에 빨려 들어가길 거절하지 못한 결과, 더 큰 정치적 결과를 불러와 버렸다.

대만 총선에서 반중 노선을 걷는 민진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하고 양안관계가 험악해지자,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매체 <협객도>는 “네티즌들의 ‘쯔위 성토’는 광적 포퓰리즘”이란 기사를 통해 이 사태의 책임을 네티즌과 대만 민진당의 탓으로 돌렸다. 모두가 상처받은 이후에 들어간 늦은 처방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태를 자성하고 반성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꾼 뒤에도 딱히 바뀌지 않는 여론이 있으니, 박진영과 JYP가 차이나 머니 앞에 바짝 엎드렸다는 비아냥이다. 자신들도 피해자이면서 이렇게까지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를 찬찬히 되짚어볼 수 있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에브리원, JYP, Mnet, MBC,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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