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이현우, ‘응팔’과 ‘무림학교’로 엇갈린 희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이현우와 박보검은 아직도 얼굴에 소년의 그늘이 남아 있는 배우들이다.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는 소년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다. 그들의 생각만큼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의 내면은 부서지고, 순수함은 때가 묻으며, 미소에는 어른의 주름이 잡혀간다. 그리고 냉정하고 냉혹한 어른이 된 남자주인공들은 어느 순간 그들의 소년 시절을 되돌아본다. 이현우와 박보검은 그때, 그 시절 세상의 쓴맛을 알아가는 소년들을 연기하기에 꽤 적절한 분위기를 갖추었다.

언뜻 비슷한 인상을 주는 두 사람은 그런 이유로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 두 배우 모두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청소년 시절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대개 소년시절의 상처 때문에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이다.

이현우는 KBS 미니시리즈 <적도의 남자>에서, 박보검은 KBS <참 좋은 시절>에서 각각 주연배우들 못지않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참 좋은 시절>의 경우는 주연 강동석을 연기한 이서진보다 그의 아역이었던 박보검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현우와 박보검은 인상은 비슷해도 가지고 있는 매력의 결이 좀 다르다. 박보검의 경우에는 내성적이고 처연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희한하게도 보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젊은 바둑 고수인 최택이 지닌 쓸쓸함보다 오히려 더 깊은 어둠이 있다고 할까?



아마 박보검이 지닌 매력의 최고치를 찍은 드라마는 KBS 미니시리즈 <너를 기억해>의 20대 변호사 정선호 역할이었을 거다. 형과 아빠와 떨어져서 사이코패스 어른의 손에 길러진 젊은 사이코패스 변호사. 하지만 그는 내면 깊숙한 곳까지 얼음장 같은 인물은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을 버린(사실 실제는 그와 달랐지만) 형 이현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가득하다. 박보검은 <너를 기억해>에서 정선호라는 이 소화하기 어려운 인물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만의 가라앉는 표정과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지만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드는 눈빛으로.

반면 이현우는 박보검보다 훨씬 더 씩씩한 분위기가 흐른다. 야리야리한 몸이지만 잽싸게 달려들어 싸울 줄 아는 소년만화의 남자주인공 같은 분위기다. 그가 KBS <적도의 남자> 이후 보여준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역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현우의 매력은 불량하거나 껄렁껄렁해도 눈빛과 표정에서 풍기는 여린 분위기를 잃지는 않는다는 거다. 여림과 씩씩함의 오묘한 어울림, 이것이 배우 이현우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조기종영설에 휩싸인 KBS 월화드라마 <무림학교>에서 이현우는 아이돌 그룹 뫼비우스의 리더이자 래퍼인 윤시우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이현우의 연기가 그리 흠잡을 곳이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무림학교>는 흠잡을 곳이 참 많은 드라마다. 별다른 의미와 맥락을 잡기 힘든 소비적인 대사와 상황 속에서 이 드라마의 매력을 찾긴 쉽지 않다. 당연히 주인공인 윤시우 또한 그저 그런 설정 속에서 꼭두각시처럼 달리고, 힘쓰고, 샤워하고, 분노하고, 마법 같은 ‘오오라’를 내뿜는다.

아마도 <무림학교>가 지향하는 바는 중국 내 한류 드라마를 만들려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의도와 달리 <무림학교>가 과연 그렇게 매력적인 콘텐츠인지는 지금까지는 잘 모르겠다. 무림학교의 배경은 국제학교라지만 그다지 글로벌한 매력은 없는 거 같은데…… 그저 지난 시절 한물간 코믹 무협물의 ‘쌈마이’한 냄새가 감돌 따름이다. 아무리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들이 몸을 날리며 뛰어다닌들 그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뫼비우스를 연기하는 남자주인공 이현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외려 KBS <적도의 남자>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면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던 소년 김선우의 풋풋한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왜일까? 박보검이 <응답하라 1988>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택이 역할을 선택한 건 탁월한 선구안이었지만 아무래도 이현우는 <무림학교>에 입학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림학교>는 초등학교 졸업 전에 입학해야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은 후에 입학해야 할 곳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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