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장르 전문가 김은희 작가의 안타까운 타협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무전을 통한 타임워프 개념을 스릴러 수사물과 결합한 장르물이다. 장기 미제사건을 능력 있는 형사 차수현(김혜수)과 젊은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이 과거와의 교신을 통해 해결한다. 기본 설정은 <프리퀀시>부터 가깝게는 <나인>에서, 무전기는 <동감>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크리미널 마인드><셜록>과 같은 추리가 필요한 수사물을 기본 뼈대로 삼고 타임워프를 얹었다는 점에서 더욱 복합적이고 본격적인 장르물이다.

실제로 <시그널>이 첫 번째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한 점도 웰메이드 드라마 <미생>의 김원석 PD와 우리나라 장르 드라마의 대표 격인 김은희 작가와의 만남이다. 사전 제작을 누누이 강조하고 이미 16회까지 대본을 탈고했음을 기사화할 정도로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은 기존 드라마 제작 관행과 파행에서 자유로운 만큼, 김은희 작가에게 따라다니는 ‘용두사미’에 대한 비판을 불식시키고, 웰메이드 장르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만들었다.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을 한창 파헤치던 3화까지 역시 장르물로 이름 날린 작가답게 몰입도가 높은 이야기를 선사했다. 수사물 특유의 높은 긴장감이 유지되고 시청자들은 추리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타임워프를 장르적 장치로만 접근하지 않고 화성 연쇄 살인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이형호군 유괴사건 같은 현실의 미제 사건을 건드려 일종의 제의적 치유의 판타지로 활용했다. 현실에서 해소되지 못한 답답한 이야기를 타임워프를 통해 해결하고 결국은 응징하는 카타르시스도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4화에서 웰메이드 수사물이라는 기대에 이상 ‘시그널’이 들어왔다. 8차 희생자 관련 에피소드에서 나타난 과거가 바뀌면 현실이 바뀌면서 생기는 사이드이팩트에 관한 논의가 없다는 점, 타임워프 설정에 대한 점검, 무전할 때 말을 끊지 않거나 조리 있게 했어도 이재한 형사(조진웅)가 버스안내양, 버스기사와의 관계를 과거에서 더 파낼 수 있었다는 점 등등 설정의 디테일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부실한 수사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있다.



스릴러 수사물이라고 하기엔 3화에서 95번 버스와 버스기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웬만한 단서는 거의 다 드러나고, 4화의 초반에 이르러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이란 무게감을 생각하면 범인이 너무 쉽게 잡힌다. 참고로 박해영 경위가 무전할 때 말만 더 조리 있게 했어도 더 쉬울 뻔 했다. 어쨌든 수사 진행 상황에 김장감 있게 몰두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맥 빠지는 싱거운 마무리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른바 장르의 ‘워프’다. 너무 일찍 범인이 드러나고 수사가 마무리된다 싶었는데, 뒷이야기에 대한 설명이 수사물의 스토리와 별개로 진행된다. 스릴러 수사물이 물러난 자리에 조진웅의 눈물연기가 빛을 발한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시작된다. 멜로가 문제가 아니다. 과연 이런 결합이 그토록 마케팅했던 수사물, 혹은 타임슬립물이라는 장르적 성취인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수사물이라면 타임워프 설정부터 시작해 모든 설명이 수사라는 맥락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3화까지 잘 나가던 수사물이 4화에선 급하게 마무리 되고, 이른바 모든 단서와 관계를 해설해주고 감정선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설명서가 따라붙는다.

<시그널>은 스토리와 별개로 유리된 해설로 부족한 정서적 만족감을 채우고, 캐릭터와 사건의 의미와 치유의 제스처를 친절해도 너무 친절하게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 장르 드라마가 가졌던 한계를 장르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드라마 특유의 친절함, 나름의 현지화된 대중코드를 통해 해소한다.



호평 속에서도 한편에서 불거진 연기력 논란도 여기서 기인한다. 수사 진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습으로 캐릭터를 그려내고 시청자들과 친해지도록 해야 하는데 시청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과 정도를 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별첨 설명으로 보여준다. 배우들의 면면만 놓고 보면 연기력 논란이 가당치 않지만, 김혜수는 보이시한 여형사의 모습을 평면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천재(건전지 없는 무전기로 과거와 소통하는 것도 일종의 초인적 재능이다) 프로파일러 역의 이제훈은 감정과 대사 처리 톤이 과장되어 어색하다. 수사 진행 상황 속에 수사물의 캐릭터가 녹아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이제훈은 셜록, 닥터하우스를 비롯한 여타 능력자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듯하다.

<시그널>에 대한 기대는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라는 데 있었다. 그러나 대중적 코드를 너무나 염두에 둔 나머지 장르적 성취와 발전 차원에선 특별히 나가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사가 만든 수사물의 한계이자 특징이 미드와 달리 신파 코드를 수사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그널>은 아예 수사의 마무리를 신파로 뒤덮는다. 이는 장르적 장치라기보다 정서적 장치다.

물론, 대중적 코드를 삽입했다는 면에서 영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 장르물의 발전과 성취에 도움이 되는 길은 아니라는 거다. 잘 만들어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원했는데 너무나 익숙한 방식의 타협이 결부된 익숙한 드라마로 매끈하게 만들었다. 멜로를 쓸 줄 모른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듣던 김은희 작가가 연극적인 과장된 연기와 감정대비를 통한 감정 표현이란 클리쉐를 노골적으로 앞세운다. 사실, 최고의 1분이라 찬사를 받는 극장신은 <국제시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의 대비를 활용한 전형적인 신파의 클리쉐였다. 웰메이드 장르 드라마라는 <시그널>이 보낸 시그널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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