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강용석보다도 더 센 펀치를 날리는 전원책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썰전>의 시청률이 4%대 가까이 이르며 자체 최고시청률을 다시 경신했다. 어느 정도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던 변화가 주효한 결과다. <썰전>은 그간 몇 번의 구설과 리뉴얼이 있었다. 이제 김구라를 제외하곤 모든 게 다 바뀌었고, 그의 역할도 <복면가왕>의 판정단보다 더 줄어들었다. 그런데 정치나 제도권 방송보다 팟케스트에서 주로 활동하는 유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십상시 발언으로 종편에서마저 일자리를 잃었던 보수 논객 전원책이 이 정도로 중흥을 이뤄낼 줄은 몰랐다. 신선했던 <썰전>의 초창기 수준으로 인기를 회복했다. 이토록 새로운 에너지가 들끓는 것은 전적으로 전원책의 공이다.

애초에 그는 김명민이 말한 ‘폭두’가 될 불안 요소였다. 일단 경력부터 그렇다. <썰전>이 신선했던 것은 필드에 속해 있는 사람이 ‘방송’에서 그 필드를 논하고 평가한다는 데 있었다. 이철희는 물론이고, 강용석과 이준석은 모두 동네에 속한 선수였다. 좌우가 아닌 정당정치의 진영논리가 맞붙는 데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정치인의 행보와 여권과 청와대의 ‘기이한 선택’들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알게 해줬다. 그러나 전원책은 단 한 번도 필드플레이어로 활약한 적이 없는 정치권 밖의 인물이다. 유시민은 재야에 묻혀 지내는 상황이고, 이런 삼자들의 토론은 예전과 비교해 공허하게 느껴질 공산이 컸다.

그런데, 평소 친분이 있던 유시민과 전원책은 여유 있는 무대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일으켰다. 유시민은 정치 할 때나 과거 <백분토론> 논객 시절의 날카로움과 삐딱함을 묻어두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며 전원책의 마구잡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는 팟캐스트를 듣지 않는 시청자들에겐 색다른 모습이다. 전원책은 그냥 고삐를 풀었다. 개척지 마을을 활보하는 호방한 카우보이 같다. 기본 사고방식이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래도 정말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콘텐츠의 한계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라면 한번은 이야기 들어볼 수 있겠다 싶고, 무엇보다 유쾌하다.



그러면서 토크쇼의 구도를 강용석과 이철희의 초창기 시절로 돌렸다. 당시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라 펀치력을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강용석은 삼자 구도에서 <무한도전>의 박명수 같은 펀치를 담당했다. 그렇게 그가 저지르고 이철희가 파고들어 시청자들은 정리를 했다. 김구라는 이 과정에 적절히 윤활유를 뿌리는 조율을 맡았다. 그러나 관계가 고착되고 그 후 들어온 이준석은 그 정도로 펀치를 날리기엔 성희롱 발언으로 제명당하고 도도맘과 얽힌 구설수가 있는 강용석보다 앞날이 너무 창창했다. 전원책은 강용석보다도 더 센 펀치를 낸다. 현실 스탠스에 발목을 잡히지 않다보니 강용석과 이준석에게 있던 억지와 기만이 없다.

이 노련한 코멘터는 원래 인간은 비논리적이라며 비논리, 비합리로 내세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작동된다. 자신의 목에 칼날이 된 내시, 환관 등의 용어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위험한 상대를 대상으로 올곧은 비판을 피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해 “검찰이 범죄의 싹을 잘라주길 기대한다”라고 말하고, 유시민이 ‘저런 분이 검찰총장을 해야 한다’고 맞받아치자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그러면 전부 다 단두대로 보낸다”라고 내지른다.



그런 한편 어린이집 대란과 같은 문제에서는 정부가 주도한 시스템에 원인이 명백히 있음에도 양비론을 펼치며 단두대로 모두를 올린다. 이때 유시민이 각자 사정이 있는 언론사가 만들어내는 뉴스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이집 대란에 대해 정리하며 전원책의 부족한 콘텐츠를 메운다.

라틴어 경구를 읽는 데서부터 새타령을 부르는 데까지, 눈을 부릅뜨고 사정의 칼날을 부르짖는 데서 웃음 띤 얼굴로 김구라와 유시민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장난까지, 뭔가 확실한 전문가라든가,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라든가, 들어줄 만큼 올바른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잡을 수 없는 모습에서 인간적 매력이 느껴진다. 뒤에 뒤통수 칠 것 같은 능구렁이가 아니라 한번쯤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주로 부름을 받던 진영에서도 버려진 논객이 됐지만 그는 단두대를 앞세워 노련하게 방송을 장악했다. 심지어 김구라의 인맥을 타고 예능 진출까지 노린다. 그는 방송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복면가왕>에 나가고 싶다. 그러면 연말 연예대상에서 신인상 후보로 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뜬금없는 포부를 남겼다. 김구라의 브레이크는 이미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좌충우돌의 에너지는 마치 미대선 중 돌풍을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를 보는 것 같다. 아무런 눈치를 볼 것 없는 사람의 거침없는 태도는 어떤 식으로든 매력이 깃들 수밖에 없다.

사안의 잘잘못을 따지고 좌파의 문제를 찾고, 보수라 칭한 정치인들의 실태를 뜯어내야 하는 부분은 전원책의 명백한 약점이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서 토크쇼가 굴러갈 수 있는 에너지와 구도를 복원하며 <썰전>은 부스터를 달았다. 이철희라는 <썰전>의 기둥이 나갔음에도 오히려 불안과 걱정을 ‘흥’으로 날려 보냈다. <나를 돌아봐>에서 이경규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일전의 명언과 함께 어떻게든 밀려나지 말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또다른 조언을 후배 박명수에게 남겼다. 누가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리라도 신기하게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면 더 잘 되니, 절대로 자리에서 빠지면 안 된다고. <썰전>을 보니 30년차 예능인의 혜안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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