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이라고? 그래도 김정수 작가의 기본기는 충분히 빛난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주말드라마 <엄마>는 평범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이 만듦새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베테랑 노작가인 김정수 작가는 <엄마>를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질 까끌까끌한 갈등을 소소하게 긁어낸다. 이 갈등은 최근 다른 드라마들처럼 살인이나, 불륜, 교통사고, 분노의 복수 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뜬금없이 불치병에 걸려 최루성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심심한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소소한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갈등의 핵심은 우리네 이웃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더 공감가고 집중되는 면이 있다. 자기가 자라온 핵가족 분위기와 너무 다른 대가족 분위기의 시댁에 질겁하는 젊은 예비신부, 착실한 삶을 사는 중년여인에게 다가온 옛 사랑 남자, 시누이와 새언니 사이에 옷 한 벌 가지고 벌어지는 갈등, 혼자 힘으로 키운 자식들의 불효에 우울해하는 엄마 윤정애(차화연)의 삶까지.

"엄마는 처음부터 니들 엄마를 하려고 태어 났는 줄 알아? 엄마도 꿈이 있고 청춘이 있어. 나 윤정애, 니들 엄마하려고 태어난 거 아냐. 이런 꼴 보려고 살려고 태어난 거 아니라고 이것들아" (윤정애)

드라마 <엄마>는 이처럼 엄마를 타이틀로 엄마와 그 주변 가족들의 일상사를 훑는다. 그리고 그 갈등의 큰 흐름에서 우리는 쉽게 악인과 선인을 구분 지을 수가 없다. 작가는 딱히 악인과 선인 사이에 38선을 그어놓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을 갈등의 비무장지대에 올려놓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각의 인물에 감정을 대입하면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최근 <엄마>의 갈등의 중심이 되는 에릭 엄마 나미(진희경)와 윤정애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윤정애는 상처한 사업가 엄회장(박영규)의 부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집안에는 엄회장의 사업을 탄탄대로로 이끈 며느리 나미가 있다. 나미의 눈에 윤정애는 자신이 일궈놓은 사업체를 홀랑 털어먹으려는 눈엣가시다. 거기다 윤정애는 자신의 막내딸을 회장의 집안에 입양시키려고 하고 집안 살림을 자기가 맡으려한다. 드라마는 언뜻 보기에 악녀 에릭 엄마와 착한 여인 윤정애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갈등을 지켜보면 각각 에릭 엄마와 윤정애 모두 이해가 가는 측면들이 있다. 더불어 며느리와 새 부인의 다툼 사이에 낀 사업가 엄회장마저도 자신만의 진실한 입장이 있다.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냐? 아버지도 다 안다. 니들 마음 타는 거 알아. 하지만 나미야, 내 나이 육십에 이제 겨우 사람 사는 거 같다. 젊어서는 돈 버느라 회사 키우느라 앞만 보고 살았어. 그러다보니 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 버렸고 나는 이제 너무 늙었고 온통 회색 같은 내 남은 삶에 빛 하나가 쏟아들어져 온 거다. 그 빛이 나를 살게 한다. 그런데 네들은 그걸 돈으로만 계산하는 거냐?” (엄회장)



이처럼 <엄마>의 갈등은 자그맣지만 현실적이다. 허나 큰 다툼이나, 교통사고, 납치 등등 자극적인 사건 없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종이인형 같은 인물이 아니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각각의 인물이 처한 날이 선 상황이 모두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를 김정수 작가의 대표작인 <엄마의 바다>나 <그대 그리고 나> 같은 작품과 비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엄마>에는 그 작품들이 가졌던 짙은 페이소스나 강한 인상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는 큰 이야기의 줄거리가 없는 소소한 시트콤처럼 흘러가는 흐릿한 드라마에 가깝다. 가끔은 가치관이나 이야기가 낡은 구식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다만 이 평범한 이야기 안에서 일차원적인 자극 없이 흥미로운 갈등을 끌어내는 힘은 지금의 많은 드라마들이 배워야할 기본적인 능력 중 하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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