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봐’가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 예능 <나를 돌아봐>는 tvN 예능 <꽃보다 할배>처럼 기존 예능에서 보지 못한 캐스팅과 시도를 통한 웃음을 기대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프로그램 콘셉트에 충실하게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사전제작발표회에서부터 UFC 계체량 이벤트를 하듯 신경전이 벌어졌고, 방송이 시작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최민수부터 시작해 기획의 핵심이었던 조영남, 김수미가 하차하기까지 줄줄이 교체와 구설을 반복하기에 이르렀고, 예능선수들부터 핫한 여자 아이돌을 데려오는 등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어쩌다보니 찾아온 ‘대박’이었다. 흐름은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무한도전> 신년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해 대중을 휘어잡으며 존재감이 급부상한 이경규와 당시 다른 일정으로 촬영에 제대로 임하지 못해 아쉬웠던 박명수가 <나를 돌아봐>에는 함께 있었다. 각자 화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던 이 둘은 예능대부인 이경규가 ‘버럭’ 후계자인 까마득한 직계 후배 박명수의 매니저가 되어 붙으면서 단번에 핫한 예능을 만들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예능총회’로 환기한 이경규의 후일담을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이곳저곳에서 둘의 활약상이 회자되면서 단숨에 핫한 예능으로 떠올랐다. 이번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이 대박 이후의 행보가 당혹스럽다. <나를 돌아봐>는 개편을 단행하면서 프로축구에 빗대자면 K-리그의 전북만큼이나 멤버가 좋은데 이를 엮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출연자들에게 시달려서 그런 것일까.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생각이 든다.

1월 말 대첩에 가까운 관심이 쏟아진 이후, 제작진은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새롭게 세팅된 전 출연자들을 데리고 해병대 체험 캠프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 쇼에 쏠렸던 기대는 흩어졌다. 사람들은 이경규, 박명수 이 두 웃음 전사들이 붙어 있는 그림을 일종의 관찰형 카메라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이지 리얼버라이티 게임쇼로 회귀를 바란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살기 위해 유연해지려는 이경규의 고뇌와 몸부림에서 오는 웃음이다. ‘예능총회’에서 이경규가 뜬 것이 버럭 아래 깔린 오랜 시간이 담보하는 진정성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단 한 차례만 맛보고 끝난 아쉬움을 <나를 돌아봐>에서 박명수라는 최고의 조력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됐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게임과 복불복, 해병대 캠프 같이 고생하는 미션이 핵심인 이유는 캐릭터와 캐릭터들의 관계망을 설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경규, 박명수 캐릭터와 이 둘의 관계 역전이 주는 설정이 무엇을 노리는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캐릭터를 잡을 시간이 필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몸개그를 노리는 그물망 통과나 얼차려 같은 해병대 극기 캠프는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모여서 짜장면 값 내기 복불복 게임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스토리 진행방향이 아니다. 차라리 이경규와 박명수를 카페에 앉혀놓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단합대회는 치고나가야 할 시기에 뜬금없는 사족이었다. 올해 초 <무한도전>에서 넘어온 흐름을 애써 유예하는 결과다. 관찰형 예능의 흐름에서 온 기회를 <1박2일>식 게임 리얼버라이어티로 소화하는 건 촬영을 더 쉽고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제작편의적인 발상이라고밖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기회를, 그 어려운 시간을 버티다 만났는데도 그냥 1주 만에 스스로 차버린 꼴이다. 악동과 불호의 이미지를 벗어내고 다듬으면서 핫한 예능으로 치고 올라갈 찰나에 굉장히 엉뚱한 선택이다.



지난 주 단합대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각 출연자들이 촬영의 마무리 장면 구상을 놓고 제작진과 난상토론을 벌였다. 박명수는 스필버그에 준하는 예능 감독처럼 예능 강의를 펼쳤고, 이경규는 최대한 피곤하지 않는 마무리를 주문했다. 이런 소규모(예전에 비해서는) 좌충우돌을 귀여운 코미디인 것처럼 보여줬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느끼기엔 <나를 돌아봐>의 불안한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금 <나를 돌아봐>는 몇 가지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개편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대한 부합과 ‘매니저와 스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지금 하던 방식으로 가는 건 모처럼 이경규에게 굴러온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그리고 매니저는 하나의 엄연한 직업이다. 갑을관계가 아니라 역할이 다를 뿐 동등한 파트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출연자를 하인이나 몸종을 다루듯 하면서 웃음을 만드는 행위는 보다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 웃음코드는 갑을관계를 풍자하는 것이 아니다. 매니저에게는,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도 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형이 매니저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잭슨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매니저가 하인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 장면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의 기대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나를 돌아봐>는 정작 아무것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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