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배우가 투자자에게 지켜야할 작은 에티켓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7광구'에 대해 내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되는 말들은 몽땅 부정적이다. 아무리 이들이 피고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영화가 나쁘다면 그냥 나쁜 거다.

그러나 내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켰으면 하는 사소한 에티켓에 대한 것이다.

제발 자기가 만드는 영화 장르에 관심이 없다는 소리는 하지 말자.

지금 나는 '7광구'의 감독 김지훈이 기자 간담회 때 했던 발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괴수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고, 3년 후 제안이 다시 오자 그땐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괴수영화는 잘 모르는 장르이기 때문에 정면승부를 해야 했다."

뭐가 문제냐고?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지훈도 그냥 가볍게 이야기했던 거고. 뭐가, 잘못인가.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하지만 장르 팬들은 이 가벼운 한마디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김지훈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장르 영화, 특히 호러 영화를 들고 나오는 감독들과 배우들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호러 영화를 싫어하는데...", "난 호러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한 두번이면 그렇다고 이해라도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이렇게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다면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도대체 저들은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남의 돈을 모아 만든 제작비로 사람들을 부려가며 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심드렁하게 하고 있느냐고!

물론 세상이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안다. 어떤 때는 인맥이 중요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모르는 장르에 한 번 도전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기도 한다. 왜 모르겠는가. 김지훈 감독도 현장에서 노력을 안 한 건 아닐 거다. 반대로 아마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피고름을 쏟았을 거다. 아마 영화 속 변신 괴물도 CG 대신 그 피고름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장르를 싫어하는데"는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말이다. 우선 장르 팬들이라면 듣는 것 자체가 지겨운 고루한 문장을 뱉는 건 홍보에 나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 장르에서 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르 영화는 결코 만들기 쉬운 영역이 아니다. 특히 호러 영화의 경우는 다리 하나만 들어도 이미 만들어진 컨벤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싫어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대충 하다보면 당연히 피를 본다. 이 피와 죽음과 공포의 제국에서 무덤덤함과 건성은 없다. 몸을 던지거나 처음부터 하지 말거나 둘 중 하나다. 처음엔 이 장르를 싫어했다고 해도 영화를 끝낸 뒤까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면 그는 영화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거다. 차라리 싫어한다면 혐오하고 증오하라. 그게 차라리 낫다.

그러니 제발 "나는 이 장르를 싫어하는데"라는 말을 말자. 정말 싫더라도 그냥 억지로 점수깎일 말은 하지 말자. 기분이 조금 좋다면 조금 공부해서 그 지식을 과시라도 하자. 특히 배우들 당신네들 말이다. 장르 고전 몇 개 제목을 읊고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 (특히 남들은 잘 모를 법한 컬트스러운 사람들) 이름을 하나라도 대보라. 만약 당신네들이 바바라 스틸이나 브루스 캠벨이 누군지 알고 있다면, 아무리 연기를 망쳤어도 평론가들의 무작정 까임으로부터 보호받을 가능성은 50퍼센트이다. 그냥 유익한 팁이니 알아두시라.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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