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이 수더분한 아저씨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즘 가장 핫한 예능인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많이 시작한 이경규도 강호동도 아니다. 유재석이나 김구라, 전현무는 현상 유지만 해도 최선인 상황이다. 최근의 박나래, 장도연처럼 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만 몇 프로 돌고나면 또 다시 회전문 밖으로 돌아나가기 일쑤다. 2~30대 젊은 피의 수혈은 물론이고, 전문 영역을 발판으로 한 방송인들의 활약상도 이제 주춤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꽃을 든 남자, 테리우스라 불렸지만 이제는 약간의 부른 배를 가진 남자 안정환.

오늘날 방송가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인물은 전직 축구선수 안정환이 유일하다. 2014년 MBC 예능 <일밤-아빠 어디가>로 출발한 그의 방송 여정은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본격적으로 물꼬를 텄다. 그의 신선한 입담과 유니크한 캐릭터는 이따금 찾아오는 A매치에만 만날 그런 수준의 상품성이 아니었다. 해설가 입문 또한 스포츠 중계에도 인지도와 스타성이라는 예능의 문법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대적 배경이 한몫했지만, 축구 중계는 그가 머물기 너무 좁은 리그였다.

월드컵 스타는 그렇게 또 다른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관찰형 예능과 여러 채널의 쇼를 거치며 한 단계씩 차례대로 올라간 그는 이번주 <냉장고를 부탁해>와 새로 시작한 <쿡가대표>의 고정 MC를 맡으며 진행의 영역에 연착륙했다. 예능인이 갈 수 있는 최고의 리그에 올라선 것이다. 물론, 안정환은 메인 진행을 맡기 여전히 부족하다. 작년 KBS의 파일럿에서 진행자로 실패를 맛본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해, 유려한 진행은 그의 캐릭터에 상충된다. 특유의 업된 방송 톤, 좌중을 이끌어가는 쇼맨십이 필요한 방송 진행은 그의 캐릭터와 전혀 맞지 않다. 밝고 상냥하고, 뭔가 에너지 가득한 쇼의 화법은 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를 그에게 어색한 옷이다.

왜냐면 그의 화법은, 그의 매력은 동네 형이나 푸근한 아저씨의 정서에서 발현되는 인간적 호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정형돈 이후 처음으로 자신만의 멘트를 개발한 순발력이 있는 MC다. 달콤한 소스를 맛보는 김성주에게 “첫 키스만큼 달콤해요?”라고 묻고 생각보다 신맛이 있다고 하자 “그럼 30대 키스로 봐야겠네요.”라고 되받는다.



하지만 이런 순발력을 받쳐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구수하고 정제되지 않은 입담이다. 뭔가 잘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아닌 줄 알았는데 평범하고, 생각보다 수더분한 것이 포인트다. 낮출 줄 알고, 솔직할 줄 아는 데서 매력이 흐른다. 입맛에 안 맞는 미카엘의 음식을 먹다가 김성주가 물어보자 “그런 줄 알면 그냥 넘어가세요”라며 난처해하다가 더 단거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그가 다른 여타 진행자와 다른 모습이다.

안정환의 예능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는 거리감이 없는, 그리고 꾸밈이 없는 뭐든 진솔하게 말해줄 것만 같다. 19금과 비방용의 경계를 화려한 드리블로 돌파한 <마리텔>의 안정환은 폭주기관차였다. 능글맞게 몰아가는 건 그의 특기다. 최지우를 한순간에 고주망태라 부르고 자신과 동급의 술꾼으로 만든다. 건강식을 보곤 막걸리 안주라고 하고, 냉장고 속 재료들을 맥주 안주, 숙취 해소용으로 분리한다.

이런 능글한 농을 던지는 아저씨 캐릭터가 매력적인 진행자로 거듭나게 된 바탕에는 <청춘FC>를 통해 보여준 그의 진정성이 코미디의 근간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후일담 형식으로 방영된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연장전>에서 예능인 안정환의 또 다른 모습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마케팅이 될 만한 통큰 기부나 일회성 이벤트를 마련하지 않는다. 앞길이 창창한 방송인의 커리어를 놔두고 온갖 고난의 길이 뻔한 지자체의 시민 구단을 맡는 것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청춘FC>를 통해 보여준 그의 진정성과 어른스러움은 툭툭 던지는 농담과 장난, 큰 감정 기복 없는 말투 속에서 방송인이 아닌 어른이자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잘났지만 얄밉지 않은 좋은 사람, 자만하거나 연예인답지 않은 모습에 시청자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미성숙한 캐릭터가 즐비한 예능에서 가벼울 줄 아는 어른이 등장한 것이다.

최근 방한한 코난 오브라이언은 우리에겐 ‘미국의 유재석’이란 수식어가 딱 맞다. 유려한 진행솜씨는 물론이고, 다년간 ‘SNL’에서 작가 겸 배우로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 출신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 정도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배경은 개인기나 짓궂은 입담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유머를 받쳐주는 진정성과 일상성이 공감대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쓰라린 아픔을 겪고도 스스로 코미디를 통해 다시 정상을 탈환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의 코미디에 녹아 있는 일상성은 증폭되고, 시청자들은 더 큰 공감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안정환과 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진행능력은 김성주에게 위탁을 해야 한다. 개인기는 아예 없다. 하지만 그의 방송에서는 돈벌이나 성공의 욕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일반인의 정서를 갖고 예능에 임하는 우리가 그전에 거의 본 적 없는 캐릭터다. 안정환을 보면 유쾌하고 바른 어느 한 사람의 살아가는 과정과 흔적을 보는 것 같다. 바로 이 진정성이 걸려 있는 다트판도 떨어뜨릴 입담과 맞나 오늘날의 대세가 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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