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인더트랩’, 제목에서 느껴지는 21세기 대학의 현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80년대 캠퍼스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을까, 아니면 매캐한 최루탄 구름 가득한 곳이었을까? 어쩌면 그 모두가 공존했을 것이다. 사랑과 투쟁은 각각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캠퍼스드라마는 태생적으로 대학생의 모습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1980년대 후반 의대생들의 사랑과 청춘을 그려 꾸준히 인기를 끌었던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가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최소한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당시 대중들이 대학과 대학생들에게 가지고 있던 낭만과 신뢰를 아름답게 극화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이후 1990년대 시작된 의학드라마나 캠퍼스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KBS는 캠퍼스와 사랑과 대학생들을 연결시키는 <내일은 사랑>이나 <사랑의 인사>를 계속해서 편성했다. 이 드라마들을 통해 이병헌, 고소영, 박소현, 배용준, 권오중, 김지호 같은 쟁쟁한 청춘스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캠퍼스드라마 속 젊은이들은 의사 가운을 입은 모범생 의대생들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인공들과는 달랐다. 한창 개방적이었던 1990년대 문화와 맞물려 이들 드라마 속 대학생들은 앞서가는 패셔니스타였고 또 제법 놀 줄 아는 언니 오빠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놀 줄만 아는 게 아니었다. 가족이나 타인이 바라는 내가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이 드라마의 대학생들이 결국 진정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캠퍼스드라마를 통해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다들 찾아 헤맸던 1990년대와 제법 잘 어울리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반면 MBC <우리들의 천국>은 ‘내’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낭만적인 캠퍼스드라마였다. MBC <우리들의 천국>은 중산층 교수 집안의 장남인 모범생 박진수(홍학표)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잘 자란 도련님 같은 진수는 특히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 눈물의 맛을 모두 맛보며 어른이 되어간다.

특히 진수의 첫 상대역인 가짜대학생 승미(최진실)는 <우리들의 천국>에 독특하고 위태로운 자리를 차지한다. 재수생에 도벽까지 있는 승미는 좋은 집에서 모범생의 삶을 살아온 젊은이들과는 다른 그늘진 젊은이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캐릭터다(물론 여기에는 고 최진실의 인상적인 연기 또한 한몫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의 사랑은 <우리들의 천국> 초반의 주요 줄거리였다. <우리들의 천국>의 모범생 진수는 진정한 사랑이란 타인의 지옥을 받아들이고 보듬는 거라는 걸 배워간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시한부 환자였던 승미의 죽음으로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슬프지만 가짜 대학생 승미는 <우리들의 천국>이란 캠퍼스에 함께 갈 수 없는 존재였던 셈이었다.



KBS의 사랑 시리즈와 MBC <우리들의 천국>은 이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대학생과 대학 생활에 대한 낭만을 그리면서 꽤 많은 인기를 얻어간다. 물론 그 드라마를 보고 자란 중고교생들이 대학에서 가서 겪는 일들은 드라마와는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대생 최수지가 있고, 장동건이 대학동기인 드라마가 현실이 되기란 그리 쉽지 않을 테니까.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을 시작으로 캠퍼스드라마는 아예 시트콤 쪽으로 방향을 튼다. 무엇보다 IMF 이후 대학은 더 이상 낭만과 환상을 안겨주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인 학자금 대출과 등록금 인상 등등을 깊이 있게 보여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캠퍼스 시트콤들은 끊임없이 청춘들의 연애를 중심으로 다루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1990년대 후반 방영을 시작했던 SBS <카이스트>는 시트콤들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카이스트>는 2천 년대에 어울리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제는 모서리가 닳은 추억 속 컬러사진 같은 캠퍼스드라마의 새로운 시작인 tvN <치즈인더트랩> 또한 지난 시절 캠퍼스드라마의 요소들을 두루 차용한다. 공부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아직 사랑에는 서툰 홍설(김고은)은 대학선배 유정(박해진)과의 연애,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대학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그런데 과거 캠퍼스드라마의 요소들을 가져왔을지언정 홍설이 다니는 대학은 더 이상 사랑이 꽃피는 공간이나 대학생들의 천국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은 말 그대로 치즈인더트랩, 달콤하지만 위협적인 덫이다. 지금의 대학은 입학하는 것도 중요한 만큼 무사히 탈출하는 것도 중요한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다. 그 덫에서 어떻게든 치즈 한 조각을 꺼내고 무시무시한 등록금과 학자금의 위협을 견디며 학점경쟁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해 탈출하기 위한 홍설의 버둥거림은 21세기 캠퍼스드라마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다만 그 덫 안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 하지만 <치즈인더트랩>에서 홍설의 연애는 더 이상 낭만적이거나 쿨한 관계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20대 청춘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작은 온기의 순간으로 여겨진다. 연인의 카톡 메시지 하나가 뜬 스마트폰이 힘든 마음을 다독여주는 따스한 손난로가 되는 바로 그 순간의 감정 말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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