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을 이겨낸 ‘쿡가대표’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시작하기 전 미리 이 글은 강호동에 대한 칼럼이 아님을 밝혀둔다. 주목하는 것은 쿡방의 과식과 식상함에 대해서다. <쿡가대표>는 대한민국 대표 셰프들이 세계 최고의 셰프들과 요리 대결을 펼치는 해외 올로케이션 프로그램이다. 홍콩 편을 시작으로 현지로 날아가 그곳 셰프들과 그들의 주방에서 대결을 펼치고 현지인들에게 음식으로 평가를 받는 일종의 도장 깨기 형식의 ‘쿡방’이다.

그런데 런칭 뉴스를 접하고 해외 대결이나 강호동의 합류에 눈길이 가기 보다는 ‘또 쿡방이라니…’ 보기도 전에 물렸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메뉴라 할 수 있는 요리를 보여줄 출연자와 입담으로 양념을 더할 MC들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그대로다. 스핀오프라고 하지만, 하루걸러 만나는 쿡방은 과식 후의 더부룩함이 식전부터 들었다. 이제는 다른 걸 맛보고나 살을 빼자는 결심이 든 시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식당들은 치열하게 메뉴 리뉴얼을 한다. 많은 식당들이 그들만의 시그니쳐 메뉴를 갖고 있으면서도 계절별로, 혹은 또 일정한 주기나 이벤트에 따라 메뉴에 변화를 준다. 새로운 맛과 새로운 분위기로 손님들이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 집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궁극의 클래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이 외식업계의 생리다.

요리를 다루는 쿡방도 마찬가지다. 한 해가 가도록 딱히 새로운 메뉴, 새로운 맛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쿡방이란 장르 자체가 식상하고 물리는 이때 <쿡가대표>는 그 마지막 장을 스스로 여는 것 같았다. 무려 강호동을 얹어 가는데서 절박함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쿡가대표>는 이런 예상을 무너뜨렸다. 물론, 예전처럼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하지만 떠나려는 발걸음을 다시 붙잡았다. <냉장고를 부탁해>와 셰프, 15분 요리 대결, 김성주와 안정환의 다이나믹 듀오까지 모든 것이 같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과 더 높은 레벨의 생소한 셰프들과의 대진은 한층 더 긴장감 있는 요리 대결을 만들어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지탱하던 대결구도의 날이 무뎌진 마당에 아예 더 높은 수준의 상대를 찾아가 스포츠 중계와 결합한 요리쇼를 펼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감자탕을 푸지게 먹고도 입가심할 디저트 먹을 배는 따로 있는 것처럼 다시 먹게 됐다. 포인트는 또 다른 볼거리가 아니라 더 높은 상대, 더 어려운 조건, 국가 대항전이란 훨씬 더 무게감이 실린 ‘대결’이다.

그간 TV에 출연하는 셰프들이 업계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한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TV에서 최고라고 여겨졌던 최현석, 이연복, 이원일, 샘킴의 요리가 해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이견을 달기 힘든 미슐렝 스타 셰프들과 대결을 어떻게 해낼지 시청자들은 몰입했다. 물론 국기를 내건 응원도 한 몫을 했다. 그냥 스핀오프라고 하기에는 이젠 그만이라고 외치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쿡가대표>가 흥미로운 건 쿡방의 다음 단계에 도전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쿡방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새로운 요리, 즉 새로운 스타 셰프의 유입이나 더 높은 단계의 화려한 퍼포먼스의 추구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쿡방 자체가 일상성을 파고든 콘텐츠이기에 보다 보편적인 방식은 지금의 결을 유지하되 질리지 않도록 캐스팅으로 신선함을 해결하는 것이다(쿡방은 현재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쿡가대표>는 일상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미슐렝 스타 셰프들을 찾아가 요리 대결의 레벨을 높이고 판을 키웠다.

전 국가대표 선수 안정환은 프로그램의 상징과 같다. 지금까지의 쿡방과 다른 A매치 중계에 가깝다. 먹음직스러운 요리,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음식의 쿡방이 아닌, 수준 높은 셰프들의 화려한 볼거리와 긴장감 넘치는 대결에 초점이 맞춰진 새로운 쿡방이다. 시큰둥하게 첫술을 떴지만 국가대항전이란 학습된 긴장감,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익숙해진 15분 요리 대결에 우리는 다시 몰입했다.



물론, 더 보완 되어야 할 지점은 있다. 대결의 형평성과 홈그라운드 이점의 인정, 그리고 편파중계의 수위 조절 등이 그렇다. 1회에서부터 이미 공정한 심사를 기대할 수 없었다. 중식 요리사와 양식 요리사가 각각 중식과 양식을 내놓았다. 특히 그 레스토랑의 특제 소스를 쓴 음식에 블라인드 테스트는 아무 소용없었다. 또한 시청률을 사로잡는 포인트가 국가대항전의 자존심 대결인 것은 인정하지만 낯 뜨거움과 불편함을 조장하지 않는 수위 조절과 보다 수준이 높아진 만큼 고급 요리에 어울리는 해설이 필요해 보인다. <냉장고를 부탁해>와 강호동의 조합이 아직까지 겉도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맛깔나는 해설이다. 축구 중계에도 해설을 둘 쓰면 썼지 캐스터를 두 명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원정이라 불리한 세팅, 홈그라운드 이점에 대한 감수를 극복하고 이겨내면 더욱 더 큰 감동이 올 것이지만, 과도한 갈등구도는 쉽게 피로해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공정한 평가의 룰, 미식을 즐기는 소양 있는 문화인의 태도도 필요한 이유다. 자극적인 양념만을 쓰면 이내 맛이 그 양념에 함몰되어 물리게 되는 이치다.

<쿡가대표>에 대한 초기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것은 이미 과식했기 때문이다. 쿡방의 미래를 책임져줄 새로운 스타셰프의 발굴은 <냉장고를 부탁해>나 올리브TV, <마리텔>이나 모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쿡가대표>는 일상성으로 다가온 쿡방이 일상을 버리고 보다 화려하고 강력한 볼거리의 쇼로 다가왔다. 일상을 벗어난 쿡방이 우리를 여전히 사로잡을 수 있을까? 미슐렝 스타 셰프의 요리, 그들을 이기는 승부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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