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반딧불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를 가리킨다.

개똥벌레의 원래 이름은 반딧불이가 아니라 반디다. 반디가 내는 불이 ‘반딧불’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반딧불을 내는 벌레를 ‘반딧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반디가 반딧불이 된 과정을 국어사전을 통해 살펴보자. 아버지는 나와 누나가 각각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일 때인 1973년에 함께 보라고 국어사전을 들고 오셨다. 그 사전은 지금 내게 있다. 민중서관에서 낸 사전이었는데, 표지가 떨어져 나가 언제 간행됐는지 알 수 없다. 이 사전에는 ‘반딧불’을 표제어로 올려놓고 ‘개똥벌레의 꽁무니에서 반짝이는 인의 불빛’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쓰이는 ‘반딧불이’는 표제어에 없다. 대신 ‘반되’가 나온다. 반되는 ‘개똥벌레의 옛말’이라고 풀이됐다.

내가 직접 산 국어사전은 동아출판사가 1990년에 편찬한 《동아 새 국어사전》이다. 사전엔 ‘1991년 10월 4일’이라고 적혀 있다. 일간지 기자시험에 합격하기 약 한 달 전에 산 사전이다. 이 사전은 제법 자주 활용했다. 지금도 나는 인터넷 사전과 나란히 이 사전을 뒤적인다. 이 사전에는 ‘반되’ 대신 ‘반디’가 표제어로 올랐다. ‘반딧불’도 물론 나오고, '개똥벌레의 꽁무니에서 반짝이는 불빛'이라고 이전 사전보다 더 간단히 풀이됐다. 이 사전 또한 ‘반딧불이’라는 단어는 올리지 않았다.

2002년에 편찬된 YBM시사의 《대한민국 나라말 사전》은 다르다. ‘반디’는 표제어에서 사라졌다. 대신 ‘반딧불’에 이어 ‘반딧불이’가 나온다.

반디가 어떤 돌연변이 과정을 거쳐 반딧불이로 됐을까? 내 생각에는 반디라는 벌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 단어를 입에 올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반딧불’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다가 '반딧불을 내는 벌레는 그럼 ‘반딧불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나’하고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반디는 제 이름 꽁무니에 팔자에 없던 두 글자를 더 달고 다니게 됐다. 단어와 말과 글은 변한다. 변화의 방향은 일정치 않다. 어떤 때는 더 날렵하게 우아하게, 다른 때는 둔하고 거칠게 바뀐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왕이면 ‘말이 안 되는 변화’를 막으면서, 단어와 말과 글이 좋은 쪽으로 진화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세상에 풍습이 서로 전해지는 동안에 그 쓰이는 말이 애초의 참뜻을 잃어버리고 그릇되게 전해진 것을 그대로 이어받고 따라 써서 그만 습관이 돼도 살피어 고치려 하지 않는다. 우연히 하나의 그릇된 말을 밝혀 깨닫게 되면 드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의문을 일으켜 그릇된 말들이 진실에 어긋남을 깨우치게 되므로, 이런 것을 자료로 삼아 《아언각비》 세 권을 짓는다.”

‘아언각비’는 바른 말을 사용하고 그릇된 것을 깨달음을 뜻한다.

다산이 《아언각비》를 쓴 뜻을 받들어 책을 한 권 썼다. 제목은 《글은 논리다》이고, 최근 나왔다.

《글은 논리다》는 다른 우리말, 우리글 지침서와 일부 겹친다. 그러나 내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찾아낸 부분이 더 많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을 굳이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많이 지적된 단어 오용 사례는 피했다.

모쪼록 이 책이 앞으로 ‘제2, 제3의 반딧불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사진=필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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