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 이윤정 PD의 실패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논란과 함께 종영한 <치즈인더트랩>은 매우 이색적인 반응을 얻은 드라마다. 보통 드라마가 논란이나 이슈로 이목을 끄는 경우는 다음 중 하나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한 막장드라마(이렇게 되기까진 MBC드라마국의 공이 컸다)처럼 시청자들의 욕과 비난이 훈장이자 양분인 경우, <그녀는 예뻤다>처럼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경우, <미생>이나 <치즈인더트랩>처럼 워낙에 유명하고 팬덤이 공고한 원작이 있는 경우다. 그런데 <치인트>는 찬사와 호평으로 시작했으나, 원성을 사다 결국 경악과 분노로 마무리됐다.

출발은 산뜻하다 못해 폭발적이었다.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로맨스릴러’라는 독특한 원작의 정서와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장면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기존 로맨스 드라마와 다른 신선함을 전달했다. 주인공인 유정(박해진)과 홍설(김고은)이 만들어낸 달달한 연애 장면들은 마치 중계 되듯이 회자됐다. 누적 조회 수 11억 건을 자랑하는 원작 웹툰의 인지도에 유정 선배의 실사판과 같은 박해진의 캐스팅과 젊은 배우들의 열연, 연출진의 인지도까지 합쳐져 tvN 월화극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그런데 대략 5회, 10회를 기점으로 드라마와 드라마를 둘러싼 반응에 미묘한 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원작에 충실하며 인기를 얻던 드라마가 원작을 점점 벗어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인공 유정의 줄어든 분량이다. 실제로 주인공 유정은 심할 경우 한 회에 10분 남짓만 등장할 정도로 비중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 특별한 로맨스에 빠져들었던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맨스는 진전되지 않고, 유정의 캐릭터는 설명되지 않았다. <치트인>만의 특징이자 극의 긴장감을 주조했던 유정의 감정선과 비밀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무시됐다. 그런 사이 출연분량과 원작에서 유정과 홍설의 에피소드까지 얻은 백인호는 놀랄 만큼 괄목상대한 서강준의 연기력이 덧입혀지며 극의 중심에 섰다. 결국, 독특한 긴장감은 삼각관계의 로맨스가 대신했다. 이해불가의 유정, 인생극복기를 쓰는 인호, 홍설의 우유부단한 연애 태도가 꼭짓점이었다. <치인트>는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반사전제작 했다. 하지만 설정 전환이 불러온 헐거운 전개와 캐릭터 붕괴는 원작과의 비교를 떠나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이런 와중에 원작자인 순끼 작가가 대본 공유 요청에도 6회 이후 대본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점, 원작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과는 다른 전개와 엔딩을 원했지만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갔다는 점 등을 들며 드라마 제작진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자 유정 선배의 달달함에 빠져들었던 시청자들은 마치 전투력을 갖춘 야당처럼 들고 일어났다. 원작의 유정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는 박해진 측의 아쉬움이 더해지면서 불은 더 크게 붙었다.

물론, 이윤정 PD에게 쏟아지는 비난 중 재고해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다. 원작의 각색과 해석에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이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자 중국에 선수출이 가능했던 건 박해진의 존재 덕분이다. 그런데 제작진이 박해진을 의도적으로 홀대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래서 유정의 비중 축소는 ‘연출의 재량’이었다는 변론이 가능하다. 원작이 얼마나 유명하든 원작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계약요건에 따라 연출자와 드라마 작가들이 충분히 각색해서 재창조, 재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각색은 고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윤정 PD팀이 각색한 내용이 <치인트>의 독자들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도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작진의 부탁대로 ‘편견’을 지우고 보면 독단이 빚어낸 갈등이라기보다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여러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 원작과는 달리 후반부로 가면서 유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이해불가의 행동과 작위적인 악행을 저지른다. 백인하(이성경)가 사고를 치고 정신병원 갇히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유정 대신 백인호의 비중을 높인 이유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 초반에는 빠른 호흡으로 원작을 소화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더니 정작 극의 핵심인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유정의 비밀은 풀어내는 대신 덜어냈다. 유정 선배의 달달함이 점점 이상해지는 이유를 마지막 회를 앞둔 15회에 털어놓았지만 너무 늦었다. 백인호에게 초점이 넘어간 이유에 대해서 설명은 끝끝내 없었다. 원작의 기획 의도와 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시청자들과 원작 독자들은 당연히 찾지 못했다. 납득도 안 되는데 원작의 장점과 특징을 걷어내고 흔한 로맨스 코드와 막장요소들을 집어넣으니 왜곡에 대한 비판이 이토록 크게 울리는 것이다.



드라마가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삼각관계의 부각과 백인호의 인생 극복기다. 마지막 회에서는 악역을 맡았던 이들도 모두 화해하고 각자 짝과 일을 찾아 잘 지내는 가운데 백인호가 화려하게 피아노 앞으로 복귀한다. 그런 반면 드라마의 초반 돌풍을 이끌고, 원작 웹툰이 지금의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핵심 중의 핵심인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는 모니터 속 텍스트로만 아리송하게 그렸다. 주인공인 유정에 집중했던 시청자들에겐 열린 결말이 아니라 뚜껑이 열리는 결말이다. 극으로 설명이 되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연출의 묘가 아쉬운 지점이다.

이윤정 PD는 <커피프린스>로 브랜드를 획득한 스타 연출자다. 당시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오랜 기간 홍대 상권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른 ‘불통’의 전개에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촬영을 마쳤으니 사전제작제의 폐해가 드러나야 했다고 해야 할까. 논란에 대한 대처가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순끼 작가의 불만 제기에 대한 짧은 사과문이 전부다. 초반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던 시청자들이 묻는 질문에 대충과 급조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스페셜’로는 답이 부족하다. 이 찝찝함을 잊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논란은 거세지만 tvN과 제작사는 포상휴가를 준비했다. 시청률과 초반에 쏟아졌던 호응과 후반부의 이슈몰이를 성공으로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화하면서 생각했던 선택이 원작의 독특함을 중화시키고 기존 드라마의 익숙한 문법을 <치인트>에 결합하는 것이었다면, 그런데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연출의 실패라 기록할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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