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청춘’, 나영석 PD의 자부심이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꽃보다 청춘> 시리즈가 예전 같지가 않다. 높은 시청률만 놓고 보면 여전히 나영석 사단의 아성이 공고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심상치 않다. 아이슬란드편에 이어 <응답하라 1988>의 출연진이 등장한 아프리카편에서도 1회 11%대가 3회 8%대로 시청률의 점진적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편은 <응답하라 1988>의 후광을 제대로 업고 시작했다. 그간 시리즈별로 텀을 뒀던 방식을 깨고 쌍문동 골목길과 아쉬운 작별을 한 시청자들 앞에 쌍문동 친구들을 바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응답은 길게 가지 않았다. 예고편이 예고된 아이슬란드편 마지막회와 아프리카편 1회에 치솟았던 시청률이 다시 내려앉았다. 이는 나영석 사단에 찾아온 첫 번째 위기 징후다.

우선 나영석 사단의 현재를 있게 한 이서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서진은 착해서 뜬 게 아니다. 그의 반전 매력은 예능에 나오는 배우들의 천편일률적인 털털함이 아니었다. 주연 배우 대접만 받다가 불시에 현장 매니저가 된 상황에 놓이면서 멋지게 보이기보단 꾀를 부리는 데 머리를 썼다. 감정에도 솔직했다. 까칠하고 귀찮아하고 편하고 싶고, 늘 불만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힘을 줄 때 도드라지는 팔뚝의 힘줄처럼 일처리 능력과 예의바른 태도, 따뜻한 마음이 간간이 드러났다. 이런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이서진의 매력은 나영석 사단의 예능을 풀어가는 실타래가 되었다.

이런 리얼한 인간적인 모습은 여행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게 만드는 일종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여기서 새로운 누군가를 알아가는 재미와 인간관계의 묘미를 느끼게 했다. 즉, 인물의 결정과 행보는 스토리의 재료가 됐다. 라오스 여행에서는 손호준이 낯선 여행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이런 역할을 했고, 페루에서는 윤상이, <꽃할배>에서는 백일섭, <꽃누나>에서는 모든 누나들이 이런 긴장감을 자아냈다. 만재도의 차승원과 유해진도 마찬가지다. 서로 위하긴 했지만 시리즈를 이끈 건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었다. 오랜 시간 찾아낸 공생의 법칙이지 ‘착함’과 ‘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의 두 청춘 여행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착한 공동체가 등장한다.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감싼다. 그러니 함께 여행하면서 갈등이나 긴장은 없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그간 함께 고생했던 형제애를 강조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아예 ‘감사하다’를 외친다.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하지만 서로 음식을 먹여주고 챙겨주는 이 절친한 커뮤니티에서 아무리 리얼함을 강조해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많이 자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비현실적으로 착한 박보검이나 서로서로 챙겨주는 화목한 관계가 잘못은 아니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때로는 따뜻함을 전달한다. 하지만 서로 위하고 잘 뭉치다보니 스토리라인을 만들 소재(캐릭터)가 각자의 색을 갖지 못하며 여행은 단조로워졌다.

<꽃보다 할배>로 시작된 나영석 사단의 예능 혁신은 여행 콘텐츠에서 풍광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대 간의 통합, 관찰형 예능의 방법론 개척 등등에 앞서서 여행의 중심에 인물을 내세운 것이 포인트였다. 이는 이후 나영석 사단의 예능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인간미를 발견하고, 평범함 속에서 공감을 찾았다. 그래서 아프리카편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게스트를 초대할 때도 대세 인물을 멀리했다. 주로 매력을 새로 찾고 개발할 수 있는 예능 무대에서 잘 볼 수 없던 배우들을 데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장 핫한 출연자들과 떠난 여행이다. 필승의 카드였다. 아이슬란드편은 출연진의 인지도가 낮은 만큼 그러려니 했지만 아프리카편에서도 회복되지 않는 재미는 ‘공감’과 ‘힐링’만으론 승부가 되지 않는 다는 걸 보여준다. 공감, 힐링, 풍경도 다 좋지만 착한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따뜻하게 그리다보니 함께하는 여행의 좌충우돌이 사라졌다(혹은 앞뒤의 인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박보검이 비행기를 놓친 일화에 대한 인터뷰에서 나영석 PD는 이미 방송 노하우가 몇 년 치 쌓였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제작진뿐 아니라 납치되어야 할 출연진과 깜짝 여행을 즐겨야 할 시청자들도 잘 적응할 수 있는 능숙한 대처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출연진들은 아무리 리얼하게 하자고 해도 방송의 영향력을 잘 알다보니 알게 모르게 방송임을 인지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엉뚱하고도 뜻밖의 상황과 환경에 몰아넣고 인간적 매력을 관찰하면서 재미가 나왔는데, 뭐 하나 트집 잡을 것 없이 순조롭고 평화롭다.

나영석 PD는 아이슬란드편을 두고 아무리 봐도 각이 안 나오는데 예능적으로 가장 재밌는 여행이라며 기대해달라고 했다. 방영 후 다소 부진했다는 반응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가장 재밌었다고 생각했는데 잘 전달되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그런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아프리카편을 바로 이어 붙였다는 점은 나름의 위기의식의 발로라 여겨진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다들 착한 데다 서로를 위하며 뭉치다보니, 인물을 관찰하며 공감과 매력을 찾아내던 나영석 사단의 그간 예능 작법에 어려움이 깊어지고 있다. 보여줄 수 있는 그림과 정서가 위로, 따스함, 힐링 이런 쪽으로만 한정된다. 착하고 속이 깊고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는 강박적일 정도다.

혹시나 높은 시청률의 착시에 빠지지 말고, 착함과 공감의 전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인물의 매력을 다시 회복할 방법은 서로가 능숙하지 못한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길이다. 흔히들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없다는 비판을 받을 때 ‘공감’과 ‘힐링’을 중시한다고 변론한다. 하지만 결코 양립되는 가치가 아니다. 공감은 재미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재미를 포기한 공감과 힐링은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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