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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귀 기울이면 이재한 형사 시그널을 들을 수 있다
기사입력 :[ 2016-03-08 13:13 ]


‘시그널’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의 최근작 금토드라마 두 편은 과거와 현재를 송수신하는 데 성공한 작품들이다.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의 추억을 바탕으로 모든 기록이 손쉽게 삭제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따스한 동화를 보내왔다. 후속작인 <시그널> 역시 <응답하라 1988>과 마찬가지로 지난 시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그널>이 송신하는 메시지는 <응답하라 1988>보다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시그널>은 장기미제 전담팀이 대한민국 미제 사건들의 진실을 밝혀내는 수사물이다. 거기에 더해 지난 시절의 형사 이재한(조진웅)과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이 동일한 무전기를 통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엮이는 흥미로운 판타지 구조를 만들어낸다.

<시그널>이 처음 우리에게 보내온 신호는 수사물 특유의 통쾌함이다. 과거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증거들이 장기미제 전담팀을 통해 밝혀질 때 우리는 짜릿한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시그널>은 단순히 다운받아 본 수사물 미드처럼 마냥 짜릿함을 주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는 먼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그것도 이 땅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미제사건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픽션과 현실이 교차할 때 느껴지는 <시그널>의 메시지는 공포다. 그것도 드라마 속의 범죄 아닌 현실의 범죄사건이 불쑥 내 옆으로 다가온 것 같은 살 떨리는 공포. 특히 홍원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던 형사 차수현(김혜수)의 에피소드는 이런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그녀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죽음의 현장에서 탈출해 좁은 골목을 힘겹게 달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호흡조차 숨차게 만든다.



하지만 <시그널>이 우리에게 공포의 메시지만 보내오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달곰씁쓸한 사랑스러움의 감정 또한 송신한다. 그건 이 드라마의 과거 안에 살고 있는 곰 같은 형사 이재한 덕택이다. 경기남부 살인사건으로 짝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1989년의 이재한이 혼자 <개그맨>이란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먹먹하게 우는 장면은 <시그널>이 처음 장르물에서 장르물 이상의 감정을 보내오는 시작이었다.

그 이후 1990년대 과거 장면에서 선배 형사 이재한과 그를 짝사랑하는 형사 차수현 사이에 오가는 무뚝뚝하나 사랑스러운 감정의 장면들은 이 수사물을 가끔은 달콤한 로맨스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거기에 화면비율이나 색감까지 과거 장면은 아련한 방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과거의 로맨스에 현재의 박해영이 슬그머니 개입하는 순간까지 있다. 현재의 박해영이 무전으로 수사 과정만이 아니라 과거의 무뚝뚝한 상남자에게 여자를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니까.

“이겨낼 겁니다. 운전은 엉망이어도 강단이 있는 놈(차수현)이에요.”(이재한)

“그렇게 이야기해 주세요. 속으로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알 수 없어요. 직접 이야기해 주세요.”(박해영)



하지만 <시그널>이 보내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한 탄식과 회복의 메시지다. 현재에 이재한은 세상에 없고 그를 짝사랑한 차수현은 감정이 파삭 마른 이성적인 여형사로 변해 있다. 박해영 또한 과거 인주 집단성폭행 사건의 주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형의 자살을 지켜본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들만이 아니라 <시그널>에서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의 가족들 또한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과거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짓누르는 것이다.

<시그널>은 그럴 때마다 우리가 헛되이 외우는 주문을 드라마적 판타지로 만들어낸다. 만약……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시그널>은 미제 사건이 해결된 뒤 달라지는 현재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시그널>이 보내는 이 탄식과 회복의 메시지는 어쩌면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맥이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과거에서 무전이 오면 어떨 거 같아요?”(박해영)

“소중한 사람을 지켜달라고 하겠지. 과거에서 무전이 온다면 말이야.”(차수현)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그널>은 수사물이면서도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송신하지 않는다. 특히 작품 속 범죄자들을 악의 극한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범죄자들을 둘러싼 환경이나 그들의 내면을 공들여 보여준다. 마치 악인으로 쉽게 낙인찍기보다 범죄의 그늘에 들어서게 되는 인간이란 존재를 보여주겠다는 듯. 대신 <시그널>은 극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진짜 거대한 악이 무엇인지를 비밀스럽게 송신한다.

김범주(장현성)나 한세규(이동하)로 대표되는 이들은 자신의 힘을 멋대로 휘두르는 자들이고, 권력과 돈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권력과 돈의 힘으로 힘없고 나약한 이들을 길들이려는 자들이다. 허나 <시그널>의 주인공인 과거의 형사 이재한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죄를 지었으면 돈이 있건 빽이 있건…… 죄를 받게 하는 게…… 우리 경찰이 해야 할 일 아닙니까!”(이재한)

과거의 형사 이재한이 무전기 아닌 브라운관 밖으로 보내오는 시그널은 상식적이지만 울림이 크다.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은 조만간 막을 내리지만 귀를 기울이면 우리도 이재한 형사의 그것과 유사한 이 세상의 시그널들을 들을 수 있다. 우주의 기운처럼 거창한 말이 아닌 지극히 상식적인 말들이지만 하나하나에 울림이 있는 메시지로 말이다. 우리가 좀 더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주인이신 국민이 살아가야 되니까요. 그분들은 포기를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돌아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그런 자리가 없습니다.”(은수미 국회의원의 필리버스터 중에서)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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