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이네 만물트럭’ 이경규의 이런 얼굴 본 적 있었던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O tvN <예림이네 만물트럭>은 2016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경규가 딸 이예림과 2015년 예능 신인 유재환이 한 가족을 이루고 트럭 행상을 꾸려 전국 시골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새로운 예능이다. 예능 대부 이경규를 받쳐주기에 턱없이 부족한 멤버, 소박한 웃음과 감동이란 어울리지 않는 착한 설정이다. 하지만 <아빠를 부탁해> 이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속정 깊은 부녀관계를 기둥으로 공손의 대명사 유재환이 가세하니 시골 어르신들께 물건과 함께 작은 행복을 파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예림이네 만물트럭>은 인적이 드문 시골 오지마을을 찾아간다는 전형적인 착한 예능을 표방한다. 일종의 가장과 딸과 오빠 혹은 예비 사위(?)가 이루는 관계도 관계지만 충청도, 전라도 시골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아들, 손자손녀 노릇을 하며 일종의 유사가족을 맺으며 효를 제공하는 의의가 기본 뼈대다. 매번 행상을 떠나니 특별한 무대는 당연히 없고,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는 데다 예능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것도 아니니 포복절도의 몸개그 등을 기대할 순 없다.

그 대신 흔히 말하는 따스한 감동과 소소한 재미를 내세운다.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은 채 시골에 홀로 남은 어르신부터, 눈이 불편해진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노년의 부부, 멀리 서울과 미국으로 떠나보낸 자녀들과 소통하는 사연까지 폭넓게 조명하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프로그램의 따뜻함은 누구나 다 알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 누구나 생각하지만 순간순간 잊고 사는 가치와 고마움을 대리충족해주는 데서 나온다.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 출연진들을 유해진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 <위대한 유산> 등 여타 착한 예능과 다른 점이 있다. <예림이네 만물트럭>의 예능적 가치는 단순히 시골 어르신들과 함께 추억을 쌓는 따스함과 착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쇼가 지닌 예능적 힘은 올해 색다른 출사표를 던진 이경규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는 데 있다. <아빠를 부탁해><무한도전><나를 돌아봐><마리텔>로 이어지는 한편으로는 유해진 모습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버럭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경규의 일련의 변화된 태도를 지켜보는 게 웃음과 재미의 키포인트다.

그래서 ‘예림이’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예림이네 만물트럭>은 이경규의 원맨쇼에 가깝다. 촬영시간 엄수, 타박, 버럭으로 그 쟁쟁한 예능선수들을 휘어잡던 이경규가 달랑 예능 신인 한 명과 세상에서 이경규를 제일 무서워하지 않는 딸과 함께한다. 이 조촐한 구성원 속에서 이경규가 고군분투하며 자의반 타의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만물트럭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스토리라인이다. 웃음은 이런 기존 이미지와 맥락의 파괴에서 나온다. 유재환과 예림이의 은근슬쩍 진전되는 듯한 관계가 못마땅한 아빠이자, “오늘 재밌게 하자고”라는 지시를 남기는 예능 대부 사이의 간극이 만물트럭의 다양한 상품들처럼 여러 가지 감정과 상황을 만들어낸다.



따로 연락하고 지내냐, 왜 딸 방에 오래 들어앉아 있었느냐, 혹시 건강검진은 받았느냐라는 질문들이나 가족병력으로 당뇨를 보유한 유재환에게 미안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말들은 딱 딸을 가진 아빠의 그것이다. 촬영 중에 ‘뭐라고?’를 남발하는 자신을 스스로 신기해하며 지금까지 다른 출연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는데 자식이니까 관심이 가는 인간의 본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로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부녀관계지만 아빠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자 시장에 들른 예림이는 아빠의 약부터 먼저 챙긴다. 예림이의 존재는 버럭으로 대표되는 이경규가 다소 유해지고, 진정성을 갖춘 캐릭터로 다가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자 설정이다.

이경규가 착한 예능을, 심지어 이런 멤버를 데리고 해본 적이 있을까? 사회가 워낙에 각박한 탓에 시작 전부터 금수저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이 쇼의 메인은 이경규인데 프로그램명이 ‘예림이’인 것은 이경규를 색다른 상황에 넣기 위한 최적 설정의 상징과도 같다. 일례로 나영석 사단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을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조건에 밀어 넣듯이 말이다. 아빠의 마음과 예능인의 태도가 시골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경규의 색다른 다양한 모습을 마치 만물트럭처럼 맛볼 수 있다. 재미는 버럭이 아닌 정다움 속에서 피어나고, 이경규도 어느 때보다 편한 얼굴이다. 이제 5회째, 시골어르신들도 ‘간혹’ 알아봐주시고, 주문전화도 한 건 들어왔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고 갈 곳은 많이 남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O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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