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전제작만큼이나 절실한 예능 시즌제 도입

[엔터미디어=정덕현] KBS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편성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단 그 제작규모가 어마어마한 데다 지금껏 해오던 드라마 제작방식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사인 NEW가 참여한 것도 그렇고, 그렇게 중국의 자본을 사전 투자받은 점이나, 중국과 동시에 방영하는 편성 방식도 기존의 드라마 제작방식의 관행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국 투자 때문에 바뀐 일이긴 하지만 100% 사전 제작된 드라마라는 점은 가장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나 싶다.

사전제작에 대한 드라마업계의 요구는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지만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국내의 편성, 캐스팅과 맞물린 드라마 제작 관행이 사전제작을 하기에는 너무 촉박하게 만든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핵심적인 걸림돌은 리스크 때문이었다. 사전제작이 된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단점 때문에 위기관리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드라마들은 사전제작을 통한 완성도를 확보하기보다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대처해가는 순발력(?)을 선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전제작(반 사전제작을 포함해)된 드라마들이 보다 나은 완성도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시그널> 같은 tvN 표 드라마들이 그 눈을 높여놓았다면 <태양의 후예>는 KBS 같은 지상파에서도 사전제작을 통한 완성도가 통한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줬다.

이쯤 되면 이제 지상파도 사태를 인식해야 한다. 사실상 드라마에서 사전제작보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순발력을 발휘하는 쪽을 선택한 기저에는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적당한 완성도라도 지상파라는 힘은 어느 정도의 요구를 맞춰 나감으로써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거라는 것. 하지만 최근 KBS 드라마들이 조악한 완성도로 심지어 3% 밑에까지 떨어지는 시청률을 경험한 걸 보면 이게 모두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더 좋은 완성도를 요구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사전제작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라도 어찌 됐건 사전제작의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보이는 반면, 예능은 어떨까. 드라마에서 사전제작을 그토록 외친 것만큼 예능에서 요구한 건 바로 시즌제다.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무한 반복함으로써 피로감을 느끼는 제작진들과 또한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마는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모두 두고 봐도 시즌제는 꼭 필요하다고 일선에 있는 PD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영석 PD가 KBS <1박2일>을 하다 그만두고 CJ로 이적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영석 PD가 CJ에서 연전연승의 프로그램들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시즌제였다. <꽃보다 할배>의 한 시즌을 끝내고 나서 <꽃보다 누나>를 가고, 또 그것이 끝나면 <삼시세끼>를 하며, 그 다음 해에는 다시 <꽃보다 할배> 시즌2를 하는 식으로 나영석 PD는 일종의 프로그램 휴지기를 계속 만들어냄으로써 그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 중간 짧지만 스스로를 위한 충전의 시간(물론 그 시간을 대부분 기획으로 보냈다고 하지만)을 가질 수 있었다. 시즌제의 결과는 좋은 시너지로 나타났다.



나영석 PD만큼 시즌제에 대한 욕구를 가진 PD가 바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다. 한 주도 쉬지 않고 10년 넘게 새로운 아이템들을 기획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만일 <무한도전>이 시즌제를 했다면 어땠을까. 더 응축된 아이템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또한 영화나 인터넷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한 <무한도전>의 확장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주 만들어 매주 방영해야 하는 상황에 이런 얘기는 언감생심이다.

드라마에 사전제작을 통한 완성도를 요구하는 것처럼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보다 지속가능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시즌제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 역시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 되고 있다. 지상파가 예능에 시즌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득권(매주 들어오는 광고매출 같은)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시대에서 콘텐츠 시대로 넘어가는 지금, 과거의 기득권을 쥐고 있다가는 미래의 헤게모니를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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