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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 조여정은 어쩌다 살인마가 되었을까
기사입력 :[ 2016-03-21 17:53 ]


‘베이비시터’, 21세기판 ‘하녀’가 보여주는 독특한 분위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천재감독 고 김기영의 영화 <하녀>와 <화녀>, 하녀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 소설 <수상한 식모들>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입주 가사도우미 이야기는 현실과 달리 영화와 소설 속에서 독특하게 변주된다. 가난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그녀들은 언제나 위험천만 아슬아슬하다. 아내들은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남편들은 늘 그녀들에게 유혹 당한다.

하지만 이 <하녀>들과 한 집안의 가장 사이의 불륜담은 빤한 불륜 스토리와 다른 곁가지의 여지를 남긴다. 겉보기엔 지극히 아름다워 보이는 부르주아 가정의 속내가 드러나는 풍자극의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계급의 관계가 역전되는 찰나를 보여주는 독특한 컬트드라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림학교>의 조기종영 탓에 KBS가 내놓은 4부작 월화드라마 <베이비시터> 역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와 맥이 닿는다. 드라마는 상류층인 유상원(김민준)과 천은주(조여정)의 집에 젊은 베이비시터가 들어온 뒤 벌어졌던 사건들을 중점으로 다룬다. 5~60년대의 식모는 아니지만 세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로 들어온 장석류(신윤주)는 과거 영화 <하녀>의 여주인공처럼 가난하지만 무언가 도발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석류는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하녀가 아닌 가난하지만 일류대 여대생 베이비시터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인간적으로 잘해주는 척 하더니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게 다 까발려지네. 날 식모처럼 부려먹는다고 당신 급이 위로 올라가는 줄 알아? 애초에 나를 베이비시터로 쓴 것도 일류대 다니는 나를 당신 발밑에서 부려먹고 싶어서겠지. 속으로 우쭐해하는 거 다 알고 있었어.” (장석류)

<베이비시터>의 카메라는 베이비시터와 불륜남의 관계에 집중하는 건 아니다. 부르주아 집안의 안주인으로 입성했지만 정작 콤플렉스는 그대로인 여인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얼굴 예쁜 것 빼고 내세울 것 없는 세 아이의 엄마 천은주는 젊은데다가 학벌까지 뛰어난 베이비시터 앞에서 점점 무기력하고 불안해진다.



이야기가 그렇게 변주 되면서 식모와 부르주아 집안 가장의 이야기가 중심인 <하녀>와 달리 21세기판 <하녀>인 <베이비시터>는 안주인과 베이비시터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리고 사실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베이비시터와 남편과 남편의 친구이자 결국 베이비시터의 남편이 된 남자를 살해한 천은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한다. <베이비시터>는 전지가위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던 부르주아 집안의 안주인이 세 사람을 죽인 살인마가 된 그 이유를 보여주는 드라마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베이비시터>의 첫 장면에 클로즈업된 배우 조여정의 얼굴은 미묘한 표정을 담고 있다. 그녀는 단순히 눈을 감았다 뜨는 게 전부이지만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찡그린 얼굴이지만 너무 과하게 찡그리진 않아서 그 표정이 분노를 말하는지, 허탈을 말하는지, 혹은 정서적 불안이나 망상을 의미하는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아서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여주인공의 얼굴이 암시하듯 <베이비시터>는 이야기의 맥락을 쉽게 구구절절 쏟아버리지 않는다. 사실 <베이비시터>는 쉽게 풀어버리면 흔한 아침드라마의 통속극이 될 위험이 클 이야기다. 하지만 <베이비시터>는 이야기를 말하기보다 천천히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베이비시터>의 장면 장면은 호흡은 느리지만 그 이미지의 여운은 오래간다.



분할된 화면구도 속에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이나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집을 염탐하듯 관음증을 유발시키는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세탁기 위에 앉은 베이비시터 석류가 다리를 흔드는 장면만으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외에도 장면이나 구도가 감탄할 만한 순간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베이비시터> 안에는 대사로 풀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이나 생략된 이야기들이 공간이나 카메라의 구도 속에 암시적으로 숨어 있다.

더구나 베이비시터 석류가 자신이 유혹했던 남자의 절친인 표영균(이승준)과 결혼하면서 이야기 자체도 쉽게 짐작 가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제 똑같이 부르주아 집안의 안주인으로 신분상승 레벨업한 석류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은주의 남편을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석류와 은주 간의 팽팽함은 느슨해지지 않는다. 단막과 미니시리즈 사이 그 경계에서 <베이비시터>는 기대하지 않은 꽤 영리한 긴장감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나저나 왜 여주인공 은주는 베이비시터만이 아니라 남편과 베이비시터의 남편까지 모두 살해한 걸까? 혹시 베이비시터의 기계음 같은 일정한 톤의 아이도저 목소리에 결국 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알고 싶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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