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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 작가들의 음모론적 세계관, 이래서 문제 있다
기사입력 :[ 2016-03-23 13:12 ]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비밀결사 역할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


제17강. 비밀결사 (秘密結社)


[명사]
1. 법률로 정해진 신고를 하지 않고 그 조직, 구성원, 소재지 따위를 비밀로 하고 있는 결사 조직
2. 음모론자들과 팩션 사극 작가들의 만능열쇠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김영현·박상연 콤비의 작품에는 유독 비밀결사조직의 등장이 잦다. MBC <선덕여왕>(2009)에는 가야의 복원을 외치는 비밀결사 ‘복야회’가 등장했고, SBS <뿌리 깊은 나무>(2012)에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사대부들의 비밀결사 ‘밀본’이 등장해 극 중 한글 창제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이자 조선 창업의 이야기인 SBS <육룡이 나르샤>(2015~2016)에는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막음으로써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한다는 비밀결사 ‘무명’이 등장했다.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에서 <선덕여왕>의 등장인물인 미실과 염종을 언급함으로써 이 세 편의 세계관은 하나의 거대한 음모론적 세계관으로 통합이 됐다. 어떤 이들은 예상치 못한 거대 세계관의 등장에 환호하기도 했고, 해당 세계관을 놓고 마블 유니버스와 빗대는 평자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환호할 만한 일이었을까? <육룡이 나르샤>가 끝난 이 시점에 되돌아 본 비밀결사 무명은, 글쎄, 악수가 아니었을까.

실제 역사에는 없었던 존재를 작중에 끼워 넣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작지 않다. 프리메이슨이나 그림자 정부와 같은 음모론 속 조직이 우리 역사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보는 이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좋아 흥행에 도움이 된다. 또한 김영현·박상연 작가는 이런 비밀결사를 주인공과 정치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본인들이 말하고 싶은 정치 담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예컨대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대왕 이도와 밀본 정기준 간의 대립에서 정기준이 던진 화두인 “모든 백성이 문자를 깨달아 정치의 주체가 되었을 때, 그릇된 정치적 결정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책임정치와 민주정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상기시켰고, <육룡이 나르샤> 속 정도전과 무명의 대립을 통해서는 인간의 욕망이 사회 발전의 동력이므로 욕망에 대한 추구를 긍정하자는 세력과 국가가 사적 개인의 욕망 추구를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세력 간의 경제관 갈등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극이 얼마나 역사를 충실하게 재현했는가 하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비밀결사의 등장이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실제 역사 속에 기록된 사건들을 해당 비밀결사가 저지른 사건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실제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축소시키고 실존인물들의 정치적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해준다는 점이다. 한글 창제에 가장 원색적이고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들의 자리에 밀본을 세워 뒀기에, 실제 역사 속 한글 창제 반대파들은 <뿌리 깊은 나무> 속에선 비교적 신사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한 사람들로 그려질 수 있었다.

실제 역사 속에선 “비루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 “문명의 큰 흠절”,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技藝)에 지나지 않는 것” 등으로 훈민정음의 가치를 깎아내렸던 최만리가 <뿌리 깊은 나무> 속에선 훈민정음을 접하기도 전에 “전하라면 온 백성이 쓸 글자를 만드는 게 충분히 가능한 분”이라 말하며 다른 누구보다 세종대왕의 능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훈민정음의 완성도를 높게 평가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을 보라.

<육룡이 나르샤> 속 무명은 전작의 밀본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낸다. 개인의 욕망을 역사의 동력으로 긍정한 집단답게 사전(私田)을 만들었고, 온갖 사건을 벌여가며 계민수전에 격렬하게 저항해 끝내 토지개혁을 과전법 수준으로 주저앉혔으며, 의안대군 이방석이 세자 책봉이 되도록 보위에 앉힘으로써 이방원이 무인정사를 저지르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명은 더 많은 정치적 책임을 실존인물로부터 가져와 떠안는다.



<육룡이 나르샤>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방석의 세자 책봉은 오로지 승려의 거짓 점괘를 믿은 신덕왕후의 염려가 낳은 작품이다. 구 고려세력과의 인척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방석을 보위에 앉혀 고려와 완전히 결별하고자 했던 이성계의 욕심이나 제 아들에게 왕위를 주고 싶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과욕, 그에 대해 불만을 품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무인정사를 계획해 낸 이방원의 행보의 책임이, 무명의 존재로 인해 그 과오가 경감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책임을 경감시키거나 실제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폐단은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지적되어 온 바 있다. 위서일 가능성이 농후한 <화랑세기> 필사본에만 등장하는 미실의 능력치를 과도하게 그린 탓에, 정사에 기록된 칠숙·석품의 난은 사실 미실이 저지른 내전이 되었다. 비담의 존재가 지나치게 부각된 탓에 극의 후반부가 뜬금없이 비담 주연의 멜로로 변질되었던 것도 두고두고 지적되는 일이었다. 실제 중점적으로 그려졌어야 했을 선덕여왕의 삶은 결과적으로 미실과 비담의 존재감에 묻혀 좀처럼 제대로 된 무게감을 가지지 못하고 표류했다.



물론 정통 사극이 아닌 ‘팩션’ 사극에 역사적 고증을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창작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지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팩션의 장점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유로운 재해석에 있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몫이어야 할 정치적 책임을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내어 떠넘김으로써 실존인물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재해석’이 아니라 아무런 해석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같은 작가진의 사극에서 연달아 세 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세 편이 모두 비밀결사들의 활약으로 점철된 음모론적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다분히 징후적인 일이다.

칠숙·석품의 난에서 훈민정음 반포까지 800여년간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흑막 뒤 비밀결사가 좌지우지하고 표면에 기록된 것은 꼭두각시라는 이 기괴한 세계관이라니. 역사를 이렇게 취급할 거라면 그냥 순수하게 무협이나 판타지 물을 쓰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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