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왜 남녀의 온도차가 심하게 발생할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태양의 후예>. 모처럼 시청률 30%를 넘기는 대형 트렌디 드라마가 탄생했다. 그런데 일부 시청자들, 특히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대사가 좋고, 달달한 것은 알겠지만 이 드라마가 과연 <9시뉴스>에 나올 정도로 웰메이드한 드라마냐는 데서 갸우뚱하는 거다. 모든 게 배우 송중기와 김은숙 작가가 빚어낸 ‘판타지’의 힘이라며 판독불가의 결론을 내린다.

유시진 대위(송중기)와 그의 부대를 곤혹스럽게 바라보는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현실성에 대한 성토로 시작해 고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가 된다. 괜한 트집은 아니다. 실제 130억 단위의 거액이 투입된 사전 제작 드라마의 미술은 설득력을 갖기엔 아쉬움이 있다.

특수작전 중 헤드라이트를 켜고 들어가고, 군이 그토록 사수하려는 전작권은 드라마 속에서 무시하고 델타포스팀과 쌈박질을 한다. 총성이 요란한 사격훈련 중에 교관이 어록을 설파하고, 대위가 헬기를 타고 다닌다. 의사 강모연(송혜교)은 건물 붕괴 현장에 치맛바람으로 투입된다. 특별한 군사 지식의 필요가 아닌 기본적인 고증이 허술한 부분이다. 심지어 특수부대에 비비탄 탄창이 등장한다. 짐작컨대, 이 부분은 어쩌면 실제 우리 군에 만연한 군납비리를 고증한 고도의 센스일 수도 있겠다.

군대 다녀왔다고, 아는 척하자는 게 아니다. 야전에서 생활하는 하얀 피부의 군 특전사 대위라든가, 부사관 중심의 특전부대에서 국방부에서 금지한 ‘다나까’체와 압존법을 구사하는 일반 사병 말투를 쓰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배경이 되는 군대의 특수성이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그 어떤 전문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은 조직과 문화다.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설정인 재벌 기업 본사가 시청자 중 극소수만이 아는 세상이라면 군대는 훨씬 더 많은 시청자들이 경험을 공유한 조직이자 공간이다. 그런데 남성 시청자들 입장에선 설익고 미화된 군대 위에 비교적 익숙지 않은 순정만화의 로맨스물이 펼쳐지고, 거기에 애국충정 코드까지 입혀져 있으니, 현실성 차원에서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열풍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 <태양의 후예>는 박 대통령이 훈시 말씀을 할 만큼 군과 애국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군이 아니라 로맨스에 방점이 찍힌 달콤한 순정만화다. 1996년에 나왔어도, 2006년에 나왔어도 성공했을 드라마가 2016년에 성공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포인트다. 시대를 초월한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김은숙 작가가 다시 한 번 펼쳐 보인 것이다.

순정만화에는 익숙한 공식이 있다. 어느 날 백마 탄 왕자가 짠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은 신비롭다. 능력도 출중하고 위트와 외모를 포함한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밀이 많다. 이런 지점이 모성애를 자극한다. 자신의 여자를 위해선 인생과 목숨을 걸고 단신으로 중무장한 갱단의 소굴에 잠입해, 총 앞에 몸을 던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지만, 오히려 감싸주고 싶게 만든다. 또, 그의 옆에는 듬직하고 우직하게 한 여자를 사랑해주는 순애보를 지닌 또 다른 매력남이 등장한다. 모든 걸 갖췄지만 애정을 갈구하는 서브 여주인공과 예쁜데 자기만 애써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랑스럽고 애교만점인 긍정적 에너지를 품은 여주인공이 어우러진다.

관계와 배경도 재벌 기업에서 군부대로, 실장, 본부장 등의 직책이 대위, 상사, 중위 등 계급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구성이다. 사랑의 장벽이 되는 신분의 갈등은 계급체계로 반복된다. 이런 순정만화식의 커플 구도 속에 김은숙 작가의 찰진 대사가 관계의 갈등과 위급한 유사시 상황들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타넘으며 알콩달콩 풀어간다.



빅보스 유시진 대위는 순정만화의 법칙을 군법처럼 철저하게 따른다. 여기서 특수부대는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걱정하게 만드는 절박한 로맨스를 키우는 지렛대다. 이른바 전쟁 같은 사랑이고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멀어질까 말까 로맨스의 긴장이 생기고 몰입은 깊어진다. 심심하면 뜯어서 쥐어주는 인식표는 그 상징이다. 여기에 재난물, 밀리터리액션, 좀비물, <24시>류의 액션스릴러 등 여러 장르가 에피소드마다 치고 빠진다. 순정만화의 뼈대 위에 다양한 볼거리와 파병부대의 색다른 배경을 갖춘 것이다. 그런 사이, 스나이퍼 건의 레이저빔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조준한 여심 스나이퍼에게 어떤 이들은 표적이 되고, 어떤 시청자들은 총구 방향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다.

<태양의 후예>가 오글거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풍선처럼 부풀린 대사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군이 아닌 다른 배경이었거나, 고증이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면 <시크릿가든>이나 <파리의 연인>처럼 별다른 이견은 없었을 것이다. 왜 인기가 있고, 무엇이 판타지인지 알겠지만 드라마의 서걱거리는 현실감이 서사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이 아쉬움이 판타지 세상에 입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유다.

순정만화는 본디, 현실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이국적인 공간에 자리한 파병 부대는 일상의 여러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감출 수 있는 훌륭한 도화지다. 달달한 드라마를 둘러싼 범아시아권의 이상 열기를 포착한 영국의 BBC는 우리나라에서 군이 갖는 특수한 위치가 성공 원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이런 시선으로는 남녀 시청자의 온도차가 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군은 배경일 뿐, 군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다. <태양의 후예>의 신드롬은 오래간만에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한 순정만화가 등장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사 메인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고 정치인들이 치켜세우는 게 오글거리고 왠지 모르게 어색한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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