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와요’, 이렇게 자극이 심해도 밍밍한 영화라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선정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거의 언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 이전부터 씨앗은 있지 않았을까? 진화론적 기원이 무엇이건, 이는 오래 전부터 우리 정신의 일부였다.

문명사회에 들어서면서 여기엔 죄의식이 추가된다. 특히 이런 선정성이 폭력과 연결된 경우 그렇다. 이유가 무엇이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오락으로 즐기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이를 어디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전적으로 허구라면 괜찮은가? 실화이거나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영화 <날, 보러와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도 이런 선정성이었다. 시놉시스만 읽어보면 이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려가 감금당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심지어 홍보사에서는 이 영화를 ‘충격실화스릴러’라고 홍보한다. 당연히 실화가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고맙게도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 실화라고 믿고 봤어도 중반부터는 이게 실화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걱정할 거리가 조금 줄어든 것이다. 정신병원 장면에서 관객들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오긴 하지만 전체 러닝타임 안에서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 엔드 크레디트까지 포함해서 9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영화이니 길이와 비중만 본다면 심각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선정성 자체가 아니다. 선정적인 장면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문제점은 선정성보다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표현 방식에 있다. 영화가 그리는 정신병원 장면의 묘사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이차원적이다. 나쁘다와 끔찍하다라는 두 형용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심지어 제대로 선정적이지도 못하다. 모든 것이 이렇게 의무방어적이라면 아무리 자극이 심해도 밍밍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선정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인 주제들은 영화를 더 심하게 망친다.

영화는 정신보건법 제24조와 보도 윤리에 대한 비판을 끌어들이는데, 이들 자체는 모두 영화 속에 들어가도 이상하지는 않다.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의견이 있으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 때문에 이 영화의 드라마가 가능해진다. 자신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선정적으로 이용해 이전에 저지른 조작방송의 오명을 벗으려는 피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보도 윤리에 대한 주제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먹히려면 이야기 자체가 진지해야 한다. 진지한 주제는 사실에 기반을 둔 진지하고 단단한 이야기가 없으면 허물어져버린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로 정말로 최악의 길을 택한다. 진지한 주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재미있는 오락물로도 먹히는 영화를 만들려는 야심을 품었는데, 그를 위해 택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물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말이 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고 추리독자들이라면 거의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구멍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작정하고 선정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실화를 소재로 했다면 문제였겠지만 어차피 개연성있는 허구라면 자극을 목표로 마구 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질주가 필요하다. 선정성이란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경험과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선정성의 진정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꾼 역시 같은 수준에 도달해야하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날, 보러와요>의 실패가 예상되는 것도 이런 경지에 오르려 노력하는 대신 플롯을 비틀고 반전을 조작하는 쉬운 방법을 통해 우회로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날, 보러와요>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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