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공간이 화두가 된 시대에 찾은 신의 한 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과소평가했다. 처음엔 반복된 일상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다른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들처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예상했다. 캐스팅으로 변화를 주고, 김광규, 강남 등이 출연해 무지개회원들의 친목과 우정을 부각할 땐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이라 봤다. 그러다 시작된 ‘더 무지개 라이브’는 출연진 확보를 위한 팜시스템이자 토크쇼의 미래형 버전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 혼자 산다>는 또 한번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 혼자 산다>는 최근 ‘더 무지개 라이브’를 통해 크러쉬, 에릭 남, 오창석, 엄현경 등 ‘핫’하거나 궁금한 연예인들의 집을 찾아갔다. 이 코너는 예능이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 잡지나 인스타그램의 동영상 버전에 가깝다. 김영철이 참숯 바이오칩 베개를 정리하는 오창석을 보고 “이 집엔 따라할 게 너무 많다”고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공간은 입고 먹는 것을 포함해 한 사람의 취향과 삶의 가치와 철학이 묻어나는 총체다. 공간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디스플레이한다. 한채아의 1일 1팩 생활화, 엄현경의 드라이 샴푸, 오창석의 실용적인 탁자와 농구화를 통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의 살림, 취미, 생활 습관을 유심히 살펴보고 경우에 따라 따라한다. 이는 최근 공간과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세수는 어떻게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갖고 있고, 즐기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일상에서부터 주변인과의 관계, 나름의 인생 가치관까지 공간을 통해서 보여준다. 사적인 공간을 구경하다 만나게 되는 인간적 면모는 실제 친구의 집에 놀러간 듯한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요리(쿡방) 다음 버전으로 호기롭게 등장한 공간(집방)을 다루는 예능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흐름은 분명 맞다. 음식(쿡방)에 이어 공간과 인테리어(집방)로 옮겨가는 변화는 해외 사례나 현재 트렌드에 비춰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점가만 하더라도 공간과 인테리어에 관한 책들이 독립 매대를 구성하고 있고 킨포크, 시리얼 등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국내판도 나왔다. 관련한 국내 라이프스타일 매거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문화적 상황 속에서 집방이 예상과 달리 흐름을 타지 못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셀프인테리어팁 등 정보성 콘텐츠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전해준다, 들려준다, 보여준다가 아닌 ‘알려준다’라는 접근은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다루는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다. 게다가 TV만의 장점을 살린 콘텐츠가 아니라 온스타일 TV의 뷰티, 패션쇼처럼 잡지 콘텐츠를 TV화한 접근이다. 이미 뭔가 고치겠다,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알아보는 사람들에겐 다소 가볍고 피상적인 정보고, 막연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셀프인테리어 팁은 남의 일이었다. 사람과 공간은 가장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지점을 건너뛰고 전시를 하다보니 라이프스타일로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 혼자 산다>는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TV콘텐츠로 가장 잘 구현한 프로그램이다. 구경하는 행위를 통해 친해지게 만든다. 무언가 알려준다기보다 옆에 있는 이웃, 그 나이대의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그냥 보여준다. 주거환경도 실제 우리네 삶처럼 다양하다. 벽지가 뜯어진 월세 옥탑부터 억 소리나는 호화 아파트와 빌라까지 여러 주거 형태를 망라한다. 연예인이니까 모두 트렌디 드라마에 나올법하게 꾸미고 살 것 갖지만 생각보다 협소하거나 평범한 가정집들 풍경이 만만찮게 등장한다.

혼자 사는 남자의 귀여움과 모성애에 초점을 맞췄던 초기 버전의 관찰형 예능이 이제 공간을 다루는 가장 성공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발전했다. 이제는 서울 싱글라이프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다. 타인의 일상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위로와 영감도 준다. 이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가 주목하는 공간의 특징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최근 고정멤버가 된 황치열, 이국주, 한채아 등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더 무지개 라이브’를 거쳤다. 방송의 원활함을 위한 일종의 팜시스템으로 출발했겠지만 공간과 사람을 연결한 거의 유일한 예능인 이 코너는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이 화두가 된 시대에 <나 혼자 산다>가 찾은 신의 한 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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