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봐’, 논란 있을 때마다 땜질과 미봉책으로 넘기더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 예능 <나를 돌아봐>는 방송을 앞두고 통상적으로 뿌려지는 홍보 기사가 아닌 폐지설이 돌았다. 한 매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제작진에게 아직 통보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이달 말 폐지를 확정됐다고 한다. 그 후 여러 후속 보도에서는 정확하게 결정한 바 없다는 말도 나왔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로 본다면 폐지 수속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하루 만에 이서진, 노홍철 등이 새로 들어가는 후속 작에 대한 기사가 여럿 나왔다.

<나를 돌아봐> 제작진과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좋지 못하고, 지난 1년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악전고투 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보다 친근하고 가까운 이웃 아저씨 같은 캐릭터로 변신한 이경규와 출연 방송 중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여준 박명수의 호통 2인조는 이슈와 기대를 끌었다. 4%대 이하로 떨어졌던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고 화제성은 치솟았다. 이 둘에 우리말 배우기에 여념 없는 잭슨과 박준형 커플까지 더해져 웃음의 빈도는 늘고, 폭소는 데시벨은 올라갔다.

폐지를 맞이하게 된 결정타는 투입된 지 1회 만에 구설수에 오르며 하차한 장동민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전적으로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방황하는 위태로운 소년을 보는 듯했다. 지난해 7월 첫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과 김수미가 갈등을 벌였다. 최민수는 제작진 폭행 관련 논란으로 하차를 해야 했다. 갈등과 긴장,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내내 출연진들에게 제작진은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혼났다. 재미와 골치가 묘하게 겹쳐 있었다. 아마도 국내 예능 중 가장 힙합스러운 방송은 모든 방송사중 가장 경직된 KBS예능국에 부담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폐지의 멍에를 자유로운 영혼들의 아티스틱한 행보에 돌리고 싶진 않다. 결국 폐지 결정이 난 절반 이상의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윤고운 PD는 브랜드를 갖춘 PD로 한 단계 더 올라서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늘 조영남, 이경규에게 혼나는 모습으로 나오긴 했지만 어려운 길을 택하며 방송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그 포부가 느껴졌다. 실제로도 능력을 발휘했다. 조영남, 김수미부터 최민수, 이홍기, 송해 선생님까지 불가능하리라 여겨지고, 또 다루기 힘든 출연자들을 블록버스터급 섭외력으로 한 자리에 모았다. 퓨리 국장급의 수완이다.

문제는 섭외력 이외의 구성과 스토리텔링과 같은 연출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실한 구슬은 있는데 이를 꿰지 못했다. 사람은 불러 모았지만, 방향이 없었다. 리얼버라이어티도 아니고 쇼프로그램도 아닌 매우 어정쩡한 형태의 예능이 되었다. 연기를 하다가 다 모여서 쇼를 펼치고, 관찰형 예능 비슷하게 흘러가다 이번 주엔 토론회 비슷한 토크쇼도 했다.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무한도전>과는 전혀 달랐다. 출연자를 자신들의 그림 안으로 통제하지 못했고, 솔직히 그 그림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벌였다. 이경규와 박명수의 ‘매니저 놀이’가 통하자 잭슨과 박준형을 투입해 비슷한 모양새를 만들려다 실패하자 우리말 배우는 쪽으로 노선을 트는 식이었다. 이런 문제들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따라가기 힘들게 만든다.

이경규와 박명수의 조합이 폭발했을 때, 소방수를 자처한 것도 제작진이다. 이 둘을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더 내밀하게 엮어도 모자랄 판에, 해병대 체험을 보냈다. 모처럼 맞은 기회를 이렇게 날리더니 최근엔 장동민과 나비 커플이 투입되어 뜬금없이 프로그램 취지와 거리가 먼 시댁체험을 했다. 이건 <자기야-백년손님>에서 해야 할 일이었다.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스토리텔링 개발이 아닌, 캐스팅 이슈(이에 따라오는 논란까지)로 에너지를 새로 투입하고 이어가려던 방식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나를 돌아봐>는 콘셉트가 매우 명확한 예능이‘였’다. 역지사지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일상을 돌아보는 예능하기 딱 좋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출연자의 역량과 이슈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구성에 심각한 구멍이 났다. 그때그때 땜질과 미봉책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선장이 통제하지 못하게 된 배는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다 결국, 회사의 결정에 의해 항해를 멈추게 될 위기에 처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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