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석·정형돈·김지호, 그들이 만든 드라마

[서병기의 핫이슈] MBC ‘무한도전’ 조정 특집은 팀 내 리더라는 자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었다. 조정이라는 힘든 스포츠 종목에 참가한 무도팀에는 세 가지 리더십이 빛났다.
 
조정에서 에이트 종목은 자신이 못하면 자신만의 기록이 떨어지는 개인종목이 아니라 내가 지치는 순간 고통은 동료에게 가고 기록은 떨어지는 단체종목이다. 그래서 모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신의 힘 이상을 발휘했던 것이다.

유재석은 ‘무도’를 이끌어오면서 항상 진심을 보여준 멤버다. 멤버들에 의해 팀 리더, 1인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댄스스포츠나 봅슬레이이, 멤버 전원이 스키장 슬로프를 타고 올라가는 동계올림픽 특집 등 특히 힘든 일에 도전하는 코너에서 유재석은 유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지치지 않는 체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해 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자신만 빛나는 게 아니라 부상이나 체력이 떨어지는 팀 동료들을 따뜻하게 챙긴다.

6일 방송된 조정특집 그랜드 파이널인 ‘STX컵 코리아 오픈 레가타’ 대회에 참가해 2000m 결승선을 꼴찌로 통과한 뒤 멤버들은 체력은 바닥 나고 거의 탈진했다. 멤버들은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하하와 박병수는 헛구역질까지 했다. 유재석도 침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멤버들에게 “사람들에게 인사하자”고 말했다. 모처럼 미사리 경기장에 구경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을 응원해주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또 유재석은 경기가 끝난 후 자평하는 자리에서 김지호 코치뿐만 아니라 화면에 자주 보이지는 않았던 두 코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 “역시 유재석”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정형돈은 조정특집에서는 부상과 체력부족으로 인해 ‘민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콕스’를 맡아 힘들어하는 멤버들에게 사기와 용기를 불어넣었다. 일부에서는 힘 안들이고 괴성만 질렀다는, 정형돈 띄우기가 지나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콕스’가 배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자리라는 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팀원들은 경쟁자들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며 방향이 잘 잡혔는지를 모른다. 오직 앞사람만 보며 노를 저어야 한다. 하지만 콕스는 이 전체를 보고 리드해야 한다. 정형돈은 결승선까지 많이 남은 지점에서 “다왔다 조금만 더 힘내”라고 소리만 지른 게 아니라 2번(박명수)에게 “반 박자 빠르다”고 예리한 지적까지 했다. 안심시키고 격려하며, 지적까지 한 것이다.

멤버들의 표정은 콕스만이 볼 수 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누구보다 심했던 정형돈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멤버들에게 “모두 너무 잘 탔다. 내가 다 봤다”고 외칠 때는 뭉클함이 전달됐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멤버들 표정이 똑 같았다. 이런 표정이 나와도 되나? 막 터졌어요”하고 말하며 그때까지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정특집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준 또 한 사람은 김지호 조정 코치다.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연하면서도 침착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멤버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며 조정에 대한 애정도 대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김 코치를 봤을 때 연예인 못지 않은 훈남의 외모로 잠깐 나오는 방송에서 이미지 관리를 하고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구태여 자신이 안좋은 말까지 해가며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쓴소리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

김 코치가 자신의 수준에서 볼 때 조정을 처음 접한 ‘무도’ 팀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적을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팀원과 신뢰가 쌓이기 전에 무조건 채찍을 든다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고 훈련 효과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지 관리 하듯 매번 좋은 말만 하는 듯 했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쓴소리를 피하지 않았다.
 


멤버들의 포지션을 확정하는 전, 화천 합숙훈련에서 2000m 완주에 처음 도전해 9분46초로 레이스를 마친 후였다. 김 코치는 “예상보다 너무 못 탔다. 정형돈과 데프콘은 그냥 얹혀 타고 온 거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이어 “유재석과 정진운만 흐름을 맞춰 힘을 다 쓴 것이다. 나머지 분들은 힘아 남아돌았을 것이다. 보탬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이 말을 드는 순간 팀원들의 분위기는 일순 무거워졌지만 이런 평가를 내리지 않고서 경기에 참가할 수는 없었다. 리더로서 지적할 것은 지적해 냉정한 평가를 내려 팀원들의 역량을 점검한 후 목표에 대비하게 했다. 김 코치의 독설과 쓴소리는 가장 정확한 지점에서 이뤄졌다.

그는 경기 당일 ‘콕스’ 정형돈에게 비상사태 대처요령을 가르쳐주고 팀원들에게 일일히 포옹하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긴장을 풀어주었다. 연습에는 강하지만 실전에 약했던 데프콘에게는 “잘 하시잖아요”라고 말하고 경기직전 배를 옮기다 노에 미끄러져 다친 박명수에게는 직접 테이핑을 해주며 스프레이를 뿌려주기도 했다.
 
경기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목이 터져라 외치며 팀을 독려했고 경기 후에는 “너무 멋진 경기였다.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 가슴 벅찬 경기라 뭐라 말을 못하겠다”면서 “저도 5개월동안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해서 너무 즐거웠다”고 말하고는 돌아서서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 박명수가 “자빠져서 미안해요”라고 말하자 김 코치는 “아니예요. 박병수씨 에이스잖아요. 부상당하고 이 정도면 정말 잘한 거예요”라고 격려했다.

김지호 코치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조정이 매력적인 스포츠라는 사실까지 알게 해주었다. 부드럽게 팀을 끌고가지만 필요할 때는 냉정한 지적과 평가를 내린 후 팀원의 역량을 최고조로 끌어내는 김 코치의 리더십은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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