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왜 탁재훈이 악마의 재능을 뽐낼 기회를 주지 않았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공중파에 컴백한 탁재훈의 평점은 몇 점일까? 축구로 인맥이 다져진 탁재훈, 김흥국, 이천수 등이 동반 출연했으니 이렇게 시작해보자. 이번 주 <라디오스타>는 공중파 예능 복귀의 첫 발을 내딛은 탁재훈의 폼에 관심이 쏠렸다. 평을 하자면 10점 만점에 6.5점. 최악은 아니었지만 기대만큼도 아니었다. 대신, 앞으로 기대해보자는 의미가 담긴 점수다.

탁재훈은 특출한 입담과 재치로 연예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형 MC다. 탁사마라 불리며 유재석, 강호동, 김구라, 박명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빅네임이고, 자신의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성격과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진행과 웃음 제조가 가능한, 즉 경기를 조율하는 패스마스터와 ‘크랙’인 드리블러의 영역이 나뉘는 오늘날 예능에서 이 두 능력을 모두 겸비한 몇 안 되는 특급 예능선수다. 사실... 이런 이유만으로 붙은 건 아니지만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악마의 재능’이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S’의 유산이 남은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보다 생생한 입담으로 날아다니기 좋은 무대인 <라디오스타>가 그 무대이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다. 워밍업 게임으로 치르고 있는 <음악의 신2>의 콘셉트를 어느 정도 유지해줄 것으로 믿었다. LTE와 그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을 희화화할 줄 아는 뻔뻔함과 여유, 그리고 진정성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의 호흡은 터지지 않았다. 게다가 전략 자체가 잘못된 경기였다. 그가 복귀전으로 믿고 선택한 경기의 코칭스텝(제작진)은 그가 알던, 그 시절의 그들이 아니었다. <라스>의 매력은 한마디로 뻔한 에피소드 토크를 지양한다는 거다. 방송에서 말하기 곤란한 말들을 묻고 그렇게 당황하다 무너지는 과정에서 독특한 정서와 웃음을 만들어냈던 토크쇼다.



그런데 몰입을 방해하는 귀여운 접근의 CG와 마치 심리상담 모임에 온 듯한 옹호와 격려로 토닥토닥 감싸주는 질문들은 탁재훈의 재능에 맞는 전술이 아니었다. 김흥국이 레스터시티의 캉테처럼 중원을 헤집으며 나고야의 태양까지 쏘아 올렸고(비유하자면 햄스트링이 올라와 중간에 경기장을 어쩔 수 없이 떠나긴 했지만), 김구라는 전방으로 공을 계속해 올렸지만 흐름은 이어지지 않았다. 중간 중간 소소한 찬스들이 있었을 뿐 탁재훈 복귀 드라마는 어수선한 전개 속에 끝내 쓰여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탁재훈에게 김구라는 재밌고 웃기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사고와 자숙 모드로 반성하는 다운된 자세는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라스>는 탁재훈을 매우 ‘보드랍게’ 대했다. 결국, 불세출의 원톱이 갖는 복귀전은 방송 분량조차 원활하게 나오지 않았다.

스캔들 때문에 장시간 방송을 쉰 예능인이, 생물과도 같은 예능계에서 다시 자신의 모습과 위치를 되찾기란 쉽지 않다. 함께하는 제작진도 역풍의 우려를 안고 시작하는 조심스러운 배팅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일수록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운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상민은 자신의 지난날을 희화화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얻었다. 김구라는 자신의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했다. 강호동, 노홍철, 이수근 등은 톤다운을 하며 복귀한 전형적인 사례인데 기존 캐릭터와 다른 무게중심 때문에 예전만큼 출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탁재훈은 오늘날 예능에서 더욱 유용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이 점점 요구되는 흐름에도 부합한다. 예를 들면 가창예능에서 언제든 자신의 무대를 가질 수 있는 확실한 ‘재능’이 있다. 그리고 화려했던 과거와 우여곡절 깊은 개인사 등 그간 쌓인 스토리는 대중과 친밀해질 현실과 일상의 ‘콘텐츠’다. JTBC <아는 형님>의 반등사례를 보라. 따라서 기왕 복귀하기로 한 만큼 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이 요구된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건 첼시 시절의 토레스가 아니다. 따뜻하고 반가운 환대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까지 가길 바란다면 그건 촬영장에서만 꽃길을 걷는 것일 뿐, 시청자의 마음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해질 것이다.

탁재훈이 대중들의 지지와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결국 두 가지다. 오늘날 예능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 성숙했다. 쉽게 말해 깐깐해졌다. 더욱더 친밀함을 원하는데 거기엔 정치적, 사회적 올바름이 요구된다. 웃음의 소재로 꺼낸 스텝들과의 일화, 지각스토리는 사실 조금만 돌려 보면 ‘갑질’ 논란거리다. 이경규가 변신한 것처럼 전혀 겪어보지 않은 다른 장르의 예능을 통해 반성하고 상쇄하는 길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길은,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일단 접어두고 예의 화려한 드리블을 다시 보여주는 방법이다.

복귀를 했으니 앞 다퉈 섭외가 들어올 테고 앞으로 방송사 간판 예능을 순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완전 색다른 모습, 아니면 배짱 있게 웃음으로 승부하는 모습이 아닌 이번처럼 기어를 천천히 올리며 가려다간 시청자들이 미리 지칠 수 있다. 현대축구가 그렇듯 오늘날 예능도 보다 컨셉화하고 보다 공격적인 운용을 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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