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미블’, 블랙과 스완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 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는 대중적인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컬트적인 코미디와 따스한 인간미가 희한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한번 빠져든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법한 드라마다. 특히 중간 중간 어수선하고 늘어졌던 분위기와 달리 <돌아와요, 아저씨>의 마지막회는 깔끔한 연출과 따스한 감동이 어우러진 꽤 괜찮은 마무리였다.

반면 MBC의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알고 보면 꽤 대중적인 코드를 지닌 드라마다. 복수와 사랑, 거기에 비밀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남자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담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빠져들 법한 서사다. 설정부터가 드라마계의 머니코드가 찰찰 흐르는 이야기인 셈이다. 더구나 원작인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 자체가 고전작품계의 스테디셀러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삼은 순정만화계의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막상 <굿미블>은 생각만큼 그리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이야기의 큰 틀은 형제 같은 친구 민선재(김강우)에게 배신당한 차지원(이진욱)의 복수담이다. 여기에 차지원이 태국에서 살인자 누명을 쓰고 쫓겨 다닐 때 그를 도와주고, 가짜 아내 역할을 자청한, 태국에서 자란 한국인 고아 카야가 등장한다. 자기 이름을 몰라 카야 그러니까 태국어로 쓰레기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차지원은 김스완(문채원)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태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차지원이 블랙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와 이미 한국에 기자로 정착한 스완과 사랑에 빠지면서 두 사람의 연애담도 함께 맞물려간다.

지금까지 <굿미블>이 성공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의 방향은 연애담 쪽이다. 특히 여주인공 스완이 연민 섞인 우정만 있을 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블랙을 바라볼 때의 감정들은 꽤 밀도가 깊다.

“넌 블랙, 난 스완.” (김스완)



하지만 블랙이 된 차지원은 자신의 약혼자였지만 배신자인 친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윤마리(유인영) 때문에 가슴 아파할 따름이다. 여기에 여전히 차지원을 사랑하는 윤마리와 짝사랑하던 윤마리와 결혼했으나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민선재의 질투 섞인 광기가 겹쳐진다. 안타깝게도 이 짝사랑의 복잡한 그물만이 극 초중반 <굿미블>을 보는 이의 눈을 잡아끄는 유일한 그물일 따름이다.

<굿미블>은 악의 축인 선우유통 사장 백은도(전국환)와 민선재의 관계를 통해 최근 유행하는 기업물의 머리싸움을 그린다. 거기에 차지원이 블랙으로 등장하면서 민선재와 백은도를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흥미진진해야 할 기업의 암투와 차지원의 활약은 그리 신통치 않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날고기는 기업 암투 드라마에 비하면 맥이 빠지는 편이라서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 이진욱이 연기하는 주인공 차지원 또한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빛이 나지만 그 외의 파트에서는 좀 뻣뻣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배우 김강우의 민선재 연기는 탁월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그리는 민선재가 그리 입체적이거나 강렬하지가 않아서 그다지 이 인물의 매력이 살아나질 않는다.



더구나 연애담과 복수극 사이에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굿미블>은 무언가 빠져드는 느낌 없이 곳곳에서 맥이 끊긴다. 어느덧 스완과 블랙은 연인이 되지만 이 두 사람의 달콤한 로맨스를 즐길 겨를은 없다. 드라마는 어느덧 삼류 코믹으로 흘러갔다, 어느 순간 지지부진한 기업 암투극으로 넘어간다. 물론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하는 것이 최근 드라마의 추세지만 이런 식으로 맥이 뚝뚝 끊기게 이어붙인다고 다 복합장르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 드라마 자체의 이야기 구조가 허술해도 성공할 수는 있다.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홀리면 문제없다. 아마 <굿미블>과 맞붙었던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 시작은 거창했으나 결국 우르크에서 홍삼의 힘으로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다 한국에서 레드벨벳에 열광하는 군인 송중기가 전부였던 이 드라마는 그럼에도 보는 이들의 눈을 홀리는 데는 성공했다. 아름다운 화면과 재빠른 장면 전환, 거기에 남녀 주인공의 꿀 같은 ‘밀당’을 기막히게 잡아내는 솜씨만은 탁월했으니까.

하지만 태국까지 가서 촬영했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이야기의 재미를 떠나 이런 드라마적 환상이 담긴 장면을 뽑아내는 데는 안타깝게도 블랙아웃이다. 백지영의 절절한 ‘그렇게 안녕’이 드라마 내내 흘러나오지만 노래 한 곡으로 보는 이들을 홀리기란 힘든 법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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