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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들호·옥다정의 ‘사이다’, 즐기되 중독돼선 안 되는 이유
기사입력 :[ 2016-04-29 13:23 ]


‘사이다’란 표현 뒤에 숨겨진 수동성의 위험에 대하여


제18강. 사이다 [cider]


[영어][명사]
1. 탄산수에 당분과 향료를 넣어 만든 청량음료.
2.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독한 술. 음료나 식초의 원료로 쓴다. [유의어] 사과주
3.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통쾌한 무언가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반의어] 고구마
4. 기다릴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할 해결책.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정의 구현은 언제나 즐겁고 통쾌한 법, 만화 같은 톤의 사회파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에서 인기다.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나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접대문화, 구조조정 등 직장 내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부조리를 정조준하고, KBS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재벌의 횡포나 임대차보호법을 악용한 건물주 주도의 젠트리피케이션,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어린이집 아동 학대를 지나 이제 대기업과 하청업체 사이의 갑질 논란을 건드리는 중이다.

드라마인 걸 감안해도 터무니없이 시원시원한 전개에 작품의 만듦새를 지적하려 해도, <욱씨남정기>는 아예 화면 위에 CG가 날아다니는 작품이고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동명의 원작 웹툰보다 더 건전 만화 같은 전개를 대놓고 보여주는 작품이니 현실성을 묻는 게 무의미해진다. 그냥, 옥다정(이요원)과 조들호(박신양)의 활약상을 보면서 “사이다네”라고 중얼거릴 뿐.

정확히 언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이 ‘사이다’라는 표현은 참 여러 군데에서 쓰인다. 더부룩한 속이나 메인 목을 탄산 가득한 사이다 한 모금으로 쓸어내리던 한국인들의 전통이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사회상을 만나 탄생한 이 표현은 이제 방송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SNS에선 유명 언론인의 한 마디나 젊은 정치인들의 소신발언, 소속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거란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한 행보를 선보이는 연예인들의 행동을 ‘사이다’라 표현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작년 연말 전국의 대학가에는 ‘사이다’라는 선본명을 달고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자기 자신을 ‘사이다’라 칭하는 과감한 홍보전략을 구사하는 정치인들도 종종 등장했다. (물론 물어보면 본인은 모르고 의원 사무실에서 한 일이라고 말하겠지.) 그래서일까. <욱씨남정기>나 <동네변호사 조들호> 관련 기사에는 빠지지 않고 ‘사이다’라는 수식어가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이 ‘사이다’란 표현 뒤에 숨겨진 수동성의 위험함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 표현엔 ‘속이 답답한 나’와 ‘답답함을 해소해 주는 사이다’의 관계만 존재한다. 세상의 부조리나 모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선 나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참여의식이나 나 또한 세상을 답답한 상태로 고착화하는 데 일조한 ‘고구마’의 일부라는 반성은 생략된 것이다. 이 구도 안에서 정의 구현은 백마 타고 온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싸움이 되고 ‘나’는 그저 누군가 사이다를 제공해주기를 기다리는 순결한 피해자가 된다.

누군가는 고작 유행어 한 마디에, 드라마에 보내는 가벼운 찬사에 뭐 그리 큰 무게를 싣느냐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어는 말하는 이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그렇게 사용된 언어는 다시 무의식을 강화한다. 정의구현을 위한 모든 노력을 성찰이나 반성 없이 ‘사이다’란 표현으로만 수식하는 순간, 우리는 사회를 바꾸는 건 우리 모두의 일이란 사실을 조금씩 망각하게 된다.



허무맹랑한 전개임을 감안해도,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옳음을 추구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반성과 희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욱씨남정기> 속 옥다정은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대기업의 질서 안에서 뛰쳐나와 모순이 작동하는 현장인 중소기업으로 갔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속 조들호는 자신이 검사 시절 충분히 용감하지 못한 탓에 진실을 은폐했던 사건이 또다른 희생자를 낳으려는 걸 보고 제 실수를 반성하고는 억울한 사람들 곁으로 가서 선다.

이들은 현실에 눈 감는 대신 정의를 추구한 탓에 모두 전보단 더 힘든 삶을 산다. 조들호는 집도 없어서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이은조(강소라)는 정의감에 거대로펌에서 나온 뒤로 생계가 어려워져서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뛴다. 옥다정은 자신의 개인사와 성격을 업무 평가에 결부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온 몸으로 돌파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보는 이들이 “나도 옥다정처럼”이나 “나도 조들호처럼”이라 생각하며 실제 삶 속에서 작은 실천을 행하는 대신 ‘사이다’만 떠올린다면, 현실 속에서 옥다정이나 조들호처럼 살아가려는 이들은 자연스레 고립되고 만다.



2016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총선이 끝나자, 19대 국회와는 달라진 20대 원내 구성을 보며 이젠 좀 ‘사이다’ 같은 일들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아무리 뜨거워도, 개혁이든 변화든 우리 스스로 직접 움직이고자 하는 노력 없이 모두 선출된 권력의 일로만 맡겨두고 ‘사이다’만 찾는다면 세상은 손톱만큼도 바뀌지 않는다. 리얼리티는 애당초 포기하고 만든 판타지로 가득한 드라마를 보며 계몽을 이야기하는 건 분명 촌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건, 그 판타지를 그저 판타지로만 보는 데에서 그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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