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의 타임머신이 매주 잘 작동하는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또 한 번의 ‘추억 돋기’에 성공했다. JTBC 예능 <슈가맨>은 58, 59번째 슈가맨으로 ‘눈물’의 리아와 ‘섹시한 남자’ 스페이스 A를 소환하며 1990년대 아이템 불패 신화를 확인했다. 당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히트곡의 귀환이었기에 다른 방송이나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시간 여행이었다. 17여 년의 시간 동안 삭발했던 머리가 자랐고, 섹시 보컬은 기품 있는 중년이 되어 나타났지만 그 시절 그대로의 가창력은 흥을 돋우며 추억을 소환했다.

오늘날 가창예능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기본은 음악과 스토리의 결합이다. 저조한 시청률로 10여 년째 애물단지 신세였던 음악 프로그램은 예능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구원받았다. 입신양명과 생존이란 스토리가 가미된 서바이벌로 시작해, 지금은 추억을 소환하는 복고 코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사랑받았던 가수들을 무대에 세우고 그 시절의 노래를 부른다. 10여 년 전 7080문화가 방송가를 휩쓸었던 것처럼 오늘날 TV 제작진의 연령대와 예능의 주요 시청자층의 세대가 맞아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슈가맨>은 이 흐름을 가장 확실하게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예능이다. 최근 음악예능의 경향을 보면 복합적인 스토리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판타스틱듀오>처럼 추억 위에 서바이벌 쇼의 재능 찾기를 동시에 노리는 식이다. 하지만 <슈가맨>은 시행착오 끝에 오히려 ‘추억 소환’에 선택과 집중했다. 노하우랄까, 그 덕에 최근 시작한 가창예능 중 가장 큰 이슈를 이끌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추억 소환의 쉽게 질릴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역주행송이라 이름 붙인 리메이크 대결을 메인 콘셉트로 잡았다. 유재석팀, 유희열팀으로 편을 나누고 각 팀마다 편곡을 맡을 작곡가와 리메이크 곡을 부를 게스트를 초대했다. 대결 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쇼의 흐름상 팀 간의 대결 구도가 슈가맨 찾기보다 더 비중이 높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슈가맨에다 세대별 방청객, 작곡가, 부팀장, 게스트까지 커버해야 하는 토크에서부터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산만했다.

이 산만함은 추억 소환에 집중하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대결은 마치 사족이 된 것처럼 비중이 대폭 줄였다. 대신 대결이 아닌 추억의 설렘에 집중했다. 슈가맨이 누구인지 맞추고, 기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자 활기가 살아났다. 다른 가창예능과 달리 그 시절 그 때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재현에 의의를 두지 않고, 연락이 끊겼던 단짝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반가움과 설렘을 자극한다. 이번 주처럼 노래방 애창곡 두 곡이 나올 경우 더욱 그렇다.



대결의 승자가 누구일지보다 슈가맨이 누구일지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생성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의 빈도와 함께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음악예능 특유의 감동을 강조하는 방식보다 밝고 흥겹다. 특히 유재석은 유희열과의 만담을 비롯해 현재 맡고 있는 프로그램 중 가장 스스로 웃음을 생산하는 진행으로 활기차고 흥겨운 분위기를 이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듣고 감동하는 천편일률적인 반응을 보다가 반가운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무슨 노래인지 몰라서 당황하는 아이돌의 표정이 더욱 잘 어울리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처럼 <슈가맨>이 매주 추억을 질리지 않게 소환해 내는 것은 오히려 추억을 집중하고 그때 그 시절을 현재에서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재석과 유희열의 유쾌한 진행이 감동과 눈물로의 접근보다 명랑하고 밝게 다가가게 만든다. 추억을 내세운다고 다 시청자의 마음을 저격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장치는 직관적인 음악 콘텐츠와 좋은 궁합이 아니다. <복면가왕>이 호기심, <프로듀사101>이 선택과 육성인 것처럼, <슈가맨>은 추억에 집중하면서 오늘날 가창 예능과 복고 열풍의 가장 큰 수혜자로 스스로 거듭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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