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예능에서 더 배우고 있는 씁쓸한 현실, 누굴 탓하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사실 눈물이 났다.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자동차 광고 제의를 거절한 송혜교에게 쓴 감사의 편지의 한 구절. “우리나라 대통령도 못한 훌륭한 일을 송 선생님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이 나고 가슴에 박힌 큰 대못이 다 빠져나간 듯이 기뻤다. 날개가 달렸으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얼마나 할머니의 힘겨운 삶에 관심을 주고 또 그 고통의 역사를 함께 인식해주며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

하지만 정 반대의 일로 눈물을 쏟는 이들도 있다. 걸 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이 그들이다. 그녀들은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맞추는 퀴즈에서 ‘긴또깡’이라고 답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식일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순간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온전히 설현과 지민에게 쏟아내는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우리네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 역사가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단답식 퀴즈 맞히기의 소재 정도로 활용되는 현실. 비뚤어진 교육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역사교육. 그리고 그것이 별 문제도 아닌 것인 양 방치하는 교육 부처들.

역사교육은 문제 맞히기가 아니다. 그것은 관점이고 시각을 갖는 교육이다. 역사는 하나의 팩트라기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포괄한다. 그러니 그것은 얼굴 하나 내놓고 누구냐고 맞히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입장과 관점들이 있고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후 스스로 역사 인식을 갖는 그 과정이 역사교육이 가야하는 길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특성상 교육의 문제는 더 일천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단답화 되어 있는 역사교육은 근본적으로 보면 설현과 지민의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때때로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역사교육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역사의 한 지점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무한도전>이 들려준 가슴 아픈 하시마섬의 진실이나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그렇고, <1박2일>이 하얼빈까지 가서 들려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 이야기가 그렇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역사를 제대로 재조명해 드러낼 때마다 시청자들은 깊은 감명의 뜻을 전하곤 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 눈물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어쩌다 역사를 예능에서 더 배우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씁쓸함 또한 묻어난다. 이러니 도대체 누굴 탓할 것인가!

송혜교의 행보에 쏟아지는 찬사와 지민과 설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너무 다른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상식이 사라진 세상에 남는 건 몰상식과 무개념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답답한 현실에 또 눈물이 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온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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