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의 늪에 빠진 ‘개콘’, ‘코빅’ 황제성에게 배워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라디오스타>를 통해 황제성을 접한 시청자들은 또 한 명의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그 무대에서 보여준 재능이 예능의 문턱을 넘지 못한 ‘안타까운’ 코미디언들의 긴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라디오스타> 게스트들에게는 실패의 대명사가 됐다. 한 회를 주름잡아도 리그에 남기 어려운 판인데 발구름판에 올라서서 제대로 구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MBC 개그 무대와 tvN <코미디빅리그>, 윤성호 감독과의 작업 등으로 쌓은 연기 경력은 또 다시 아는 사람만 아는 만년 유망주의 이력서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만약 tvN <코미디빅리그>의 시청자라면 황제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지난 4월 3일, <코빅>은 2쿼터로 재단장했다. 전체 코너의 절반 이상이 신규 코너로 채워졌고, 생존한 코너들도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김영희, 허안나, 이상구 등 <개그콘서트>의 중진급 연기자들도 가세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는 코너가 바로 황제성의 원맨쇼가 빛나는 <코빅>의 최장수 코너 ‘깝스’다.

황제성은 존슨 황이라는 한국말이 어눌한 교포 경찰 역을 맡아 캐릭터를 살리는 연기력과 춤솜씨, 거기에 불을 뿜는 애드립으로 웃음을 터트린다. 기존 상대역인 하준수를 넘어선 인지도 높은 카운트파트너들이 가세하면서 몰입도는 대폭 증폭되었다. SNS 중독자이자 문어발식 연애관을 가진 남자, 본업인 개그보다 빙수 가게를 생각하는 선배 유상무와 분장의 박나래의 본격적인 가세는 황제성의 연기에 의존하던 기존 <깝스>의 코미디에 리얼리티를 더했다. 예전 코너 중 ‘직업의 정석’의 양세형처럼 상황극 속에서 실제 연기자를 갖고 노는 스탠딩 코미디인데 보다 짜임새 있는 대본과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코빅>에서 만나는 황제성은 머뭇거리고 당황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라스>의 황제성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코미디를 다룰 수 있는 폭과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여타 개그 프로그램보다 몇 발 앞서 있는 <코빅>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올린 에이스다. 황제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깝스’가 늘 1위 경쟁을 벌이는 코너란 점도 있지만 코미디에 리얼리티 요소를 보강한 점과 일상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코미디 스타일 때문이다. 새 단장한 ‘깝스’는 <코빅>의 두드러진 경향이자 금기의 벽을 뒤로 물리는 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코빅>이 여타 개그 프로그램과 가장 큰 차이점은 예능에서 활동하는 코미디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상무, 조세호, 문세윤, 이국주, 박나래, 장도연, 특히 양세형 등은 예능에서 러브콜을 받고 실제로 예능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코미디언이다. 따라서 보다 다채롭고, 오늘날 예능이 보다 시청자들과 일상적이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흐름을 잘 이해하고 개그 콘티에 반영한다.



이국주와 이상준이 관객과 호흡하며 농을 치는 ‘오지라퍼’는 연애에 있어 남녀의 인식 차이를 밀착 관찰하면서 일상성과 공감대를 획득한다. 그들이 코미디로 내세우는 카톡 대화창이나 앙케이트 설문지 등에 사람들은 웃으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 새로 가세한 김영희는 전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개콘>에서 히트쳤던 ‘끝사랑’을 스스로 패러디하기도 하고, 드라마 <시그널>을 패러디한 타임슬립 코미디 <시그날>은 백종원, 김태호PD, 임요환 등 실제 인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코미디를 주조한다. 또 하나의 대형 코너인 <왕자의 게임>에서 이진호는 노래가사, 상표 브랜드 이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농을 치면서 특히 여성 관객들의 배꼽을 사로잡는다.

<개그콘서트>가 깊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예능 전체 판도에서 코미디 프로의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그런 와중에 <코빅>은 보다 일상화되는 예능의 변화에 발을 맞춰 코미디의 소재와 방향을 바꿔가는 중이다. 출연자들의 커리어와 대외 활동이 코미디의 자산이 되는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방식이고, 방송의 금기와 관례를 넘어서는 소재들은 일상 공감대를 자극하는 오늘날 예능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비록 코너들이 워낙 구조적이라 반복에 취약한 단점은 있지만 <코빅>은 점점 더 벌어지고만 있는 예능과 개그 프로그램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하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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