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교차하며 부친 생애 7년간 복원…해방전후~1960년대 시대상도 전해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장남으로 만 51년여를 지내고 맞은 가을의 어느 주말이다. 집안을 정리하던 그는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인 종이상자를 발견한다. 그 상자에는 다시 작은 종이상자가 세 개 있다. 그중에서 작은 상자 한 개를 연다. 필름이다. 대개 한지로 정성스레 감싸 갈무리해둔 롤 상태의 필름이다. 그는 ‘아버지가 참 꼼꼼하게 잘 챙겨두셨구나’ 생각한다.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많이 촬영하곤 했다. 12장짜리 필름이 100여 롤 가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1,000컷이 넘는 분량이다.

필름의 존재를 비로소 발견한 그에게 어머니가 양철상자에 담긴 아버지의 수첩 10여 권을 찾아와 건넨다. 그는 그날부터 집안 여기저기를 뒤져 아버지가 보관하거나 남겨둔 각종 증명과 기록, 편지를 찾아낸다. 필름, 수첩, 자료를 다 모아놓으니 큰 여행용 트렁크 하나를 가득 채울 분량이다.

당신이 그였다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까. 당신은 부친의 자료를 발굴하고 모으면서 그동안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면모를 얼핏얼핏 마주치게 됐다. 당신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추억과 회한에 젖었을 게다. 어떤 사진은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다른 자료는 아내와 아이에게 설명했으리라. 그리고 나서 필름은 필름대로, 증명서는 증명서대로, 편지는 편지대로 가지런히 정돈한 뒤 추억의 문을 가만히 닫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게다. 이게 대개의 반응이었을 게다.

◆ 기록의 모음 퍼즐 맞추기 나선 까닭

그는 이와 판이한 선택을 한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날줄로 삼고 아버지의 지인들의 기억을 씨줄로 교차하며 자신이 몰랐던 부친의 삶을 탐사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가 2009년 가을이었다. 그는 토요일마다 필름을 일일이 인화하고 스캔해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다. 아버지를 알 법한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사진을 디지털로 바꾸는 작업에만 1년여가 걸렸다. 이후 그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공주시 경천리, 논산시 노성면, 경남 통영을 오가고 전화하고 하와이에 거주하는 부친의 지인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과거를 직조해나갔다. 그렇게 착수하고 취재하고 정리해 올해 4월 이 책을 내기까지 7년이 걸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방대하지만 단편적인 기록의 모음을 퍼즐처럼 맞춰나가도록 했을까. 우선 기자로 20여년 동안 활동하면서 밴 호기심과 사실을 확인하고 알아내 글로 써내는 습관이 그중 하나이겠다. 필름을 발견하고 수첩을 건네받은 그는 “사진과 수첩을 맞춰보면 뭔가 그림이 그려지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들려준다. 그는 “무슨 궁리를 할 여지가 없이 그런 생각이 다가왔다”고 말한다. 이어 “손에 쥔 자료들을 정리하고 그 사이사이의 빈틈을 현장 취재로 메우는 것은 내가 늘 하던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로는 충분치 않다. 다른 동인은 일종의 부채의식이다. 그는 “내가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남의 인생 따라잡기로 살아온 마당에 아버지가 이토록 많은 자료를 남겨주셨는데 그걸 정리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자격지심이 이 책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고 들려준다.

더 결정적인 동인은 40여년 동안 이어진 부친의 부재(不在)가 실재(實在)의 가능성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자료를 하나하나 새로 찾아낼 때마다 가슴이 한 단계씩 벅차올랐다”며 “40여 년간 부재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에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를 끼워넣는다. 나는 저자와 같은 언론사에서 일했다.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김창희 선배를 비판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기자의 롤 모델로 기억하고 있다. 또 나도 아버지를 여의었고 선친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며 지내는 참이었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나처럼 김 선배도 기자로서 세상사를 기사로 쓰면서 정작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위한 글을 쓰지 못했다는 빚을 마음에 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올해 만으로 쉰을 넘겼다. 저자가 부친의 필름 롤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나이다. 그래서도 이 책을 선친과의 부자관계 속에서 읽고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 한 가족이 통과한 일제강점기와 전쟁

독후감이 여기까지라면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게다. 저자는 부친 김필목(1923~1966) 선생의 삶을 통해 해방전후부터 1960년대 초의 시기를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근본주의 계열의 개신교 교단인 ‘고신파’ 또는 ‘고려파’다. 고신파는 장로교회 중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들의 신앙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며 1950년대 초 단일 장로교회에서 최초로 분리·독립했다. 고신파는 경상남도에 큰 세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 지역 고려파 장로교인들의 상당수는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기독교를 배척하자 넘어온 이북 사람들이었다.

김필목 선생은 외조모 이래 3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모친과 함께 1940년대에 평양에서 살았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주기철(1897~1944)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가 이를 거부하고 복역하다 옥사했다. 그의 모친은 주기철 목사의 조카인 주영혁 선생의 부인과 신앙활동을 활발히 했다. 김필목 선생이 해방 후 경남 통영여중으로 내려가 가르치게 된 것은 주영혁 선생이 그곳에 먼저 교장으로 부임해 그를 불러서였다.

저자의 모친 이복숙(1925~2014) 씨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관립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김필목 선생과 결혼하기까지 간호사로 일했다. 모친도 고신파 교인이었다. 모친은 교인의 소개로 통영여중 교사 김필목 선생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모친은 그에게 “내가 ’고신’ 안에서 자랐고 그 안에서 생활했으니 의례히 그러려니(고신파 교인과 결혼해야 한다) 하고 지냈다”고 말한 바 있다.

모친이 근무한 부산 복음의원(현재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은 장기려 박사가 원장으로 초빙돼 운영하고 있었다. 장기려 박사는 김필목 부부가 결혼하기까지 후견인 역할도 한다. 평양도립병원장과 평양의대 교수로 활동하다 월남한 장 박사는 평생을 의료에 헌신하며 우리나라 공공의료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저자의 집안은 6·25전쟁의 참화에 직접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인공치하 서울에 숨어있던 부친은 후퇴하던 인민군에게 붙잡혀 끌려간다. 폐결핵을 앓고 있던 부친은 그대로 끌려갔다면 아마 불귀의 객이 될 터였다. 그가 위기를 벗어난 것은 서북 여인 특유의 거침없고 끈질긴 성격을 지닌 그의 모친 덕분이었다. 그의 모친은 인민군을 따라가며 간부에게 폐병환자를 데려가서 무얼 하려느냐고 읍소한 끝에 아들을 구해냈다. 저자는 당시 부친과 조모가 서울시민으로서 겪고 당했을 고초를 김성칠 교수(1913~1951)의 책 《역사 앞에서》를 배경으로 설명한다.

이밖에 해방 후 고등공민학교 교육의 현장, 순박하고 정이 많은 학생들, 학교 안팎의 모습, 이승만 독재시기의 단편, 물질은 부족했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살가운 정경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 "아들이 아버지만 못하다"

이 책에서 가장 밝게 떠오르는 부분은 부친의 통영시대다. 폐결핵으로 연희전문학교 물리학과를 2년 다니고 중퇴한 부친은 경천과 노성에서 임시교사로 가르친 뒤 통영에서 수학과목 정교사가 되고, 건강을 회복하고, 가정을 꾸린다. 이어 첫 아들인 저자를 본다. 부친은 아들과 가족, 학교, 통영의 사진을 수시로 필름에 담는다.

저자는 통영을 고향으로 알았다가 조금 자란 뒤 그곳이 고향이 아니라 그저 출생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통영에서 다시 살게 되고 새로 살게 됐음을 알게 된 뒤 통영을 ‘고향 이상의 장소’로 인식하게 됐다. 저자는 부친이 사랑한 고장 통영과 그래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로 새로 다가온 통영이 풍기는 정취를 책 곳곳에서 여러 문학작품을 인용해 풀어놓는다. 소설가 박경리, 김연수, 윤대녕이 통영에 대해 말하고, 시인 유치환과 고은, 황동규도 통영을 노래한다.

책은 479쪽 분량이다. 사진이 많이 실렸다. 자칫 ‘김필목 선생 연대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저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잘라 재배치함으로써 내용의 긴장을 유지했다. 책을 읽다가 재미나거나 지적인 비유나 표현을 만날 때면 저자의 웃는 눈매를 상상해도 좋겠다.

아, 저자가 발견한 부친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선생님이었으며 어떻게 살았나. 책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저자의 다음 말로 대신한다.

“젊은 날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노인으로부터 “아들이 아버지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아버지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떠안게 됐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smitten@naver.com

[사진=한울]

[책 정보]
《아버지를 찾아서》, 김창희 지음, 479쪽, 한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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