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신’, 국수야 국수야 뭐하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어느덧 중반에 이른 KBS 수목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을 재미없는 작품이라 단정짓기는 좀 애매하다. 이 드라마에는 눈여겨 볼 구석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첫 회에 등장해 사이코패스 김길도(조재현)의 청년 시절을 보여준 바로의 연기는 훌륭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청년 김길도의 삶을 뒤쫓으며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면들도 멋지게 빠졌다. 그렇기에 <국수의 신> 1회만 놓고 보면 완성도 높은 단막극 한 편을 감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육수는 다 우러났어. 이제 찰진 반죽으로 쫄깃쫄깃한 면만 뽑아서 끓이면 끝내주는 국수 한 그릇 같은 드라마가 탄생할 거야. 더구나 드라마 첫 장면에서 주인공 무명(천정명)이 읊조리던 대사에도 공감이 갔다.

“누구에게나 국수에 대한 추억이 있다.” (무명)

그렇다. 국수에 얽힌 추억이 없는 사람 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채 삼 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사람들의 허기와 초라한 마음을 달래주는 국수 한 그릇. 그렇기에 뜨끈뜨끈한 잔치국수 한 그릇만 봐도 사람들은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큼하게 비벼놓은 비빔국수 한 그릇만 눈앞에 있어도 입안에 침이 고이며 지친 인생에 활력이 돌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는 주인공 무명에 천정명이 나쁘진 않아 보였다. 뭉실뭉실한 밀가루 반죽이 떠오르는 살 오른 그의 얼굴이 국수 명인과도 제법 어울려 보였으니까. 설령 이 드라마가 <제빵왕 김탁구>의 국수 버전이라 한들 흥미롭게 지켜봐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국수의 신>, 2회에서 무명이 쑥색 스웨터를 입고 교생 아닌 고교생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이 드라마에는 마가 끼기 시작했다. 첫 회에는 인상적이었던 어두운 톤의 화면이 2회부터는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더구나 겉보기엔 맹한데 국수는 잘 마는 요리사가 아닌 김길도(조재현)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후 쫓기듯 살아온 고아 청년 무명을 연기하기에 천정명은 벅차 보였다.

남자다운 몸집과 귀여운 얼굴이 공존하는 이 배우는 고현정과 함께 한 <여우야 뭐하니?>의 연하남 이후 아직까지 본인의 매력을 강렬하게 어필한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 <패션70>의 터프하고 냉소적인 장빈 역할은 꽤 괜찮게 소화했건만 그 이후 그는 어둡고 남자다운 남자들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국수의 신>의 무명은 귀엽게 활짝 웃는 짜파게티 요리사가 아니라 냉정하고, 능청스러우며, 때론 위협적인 사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생각보다 별로인 이유를 무명 역의 천정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실 <국수의 신> 초반의 중심축은 천정명보다 조재현이 연기하는 궁락원 대면장 김길도에 맞춰져 있다. 그는 성공을 위해 많은 사람을 죽인다. 국수의 명인인 장인 고대천(최종원)이 김길도의 비밀을 캐내려하자 그마저 사고로 위장해 식물인간을 만들어 버린다.



첫회의 어두운 화면이 암시했듯 <국수의 신>은 기대와는 다르게 어두운 드라마다. 느와르에 가까울 정도로 살인과 범죄와 피가 난무한다. 무시무시한 칼, 국수 드라마가 아닌가 싶을 만큼 살벌한 장면들이 매번 등장한다. 사실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때 기대했던 건 면발을 휘날리는 결투였지 주먹질과 살인이 난무하는 혈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벌한 화면에 비해 극 중반에 이르는 동안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자극적이지 않았다. 무명과 무명의 고아친구들, 그리고 김길도와 김길도의 딸에게 일일이 분산되어 산만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하려 가끔씩 양념처럼 등장하는 유머는 과거 조폭영화에서 많이 보는 스타일이라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결국 드라마 중반에 이를 때까지 면발을 삶는 중이 아니라 여전히 반죽에만 힘쓰고 있는 추세였다. 복수극이지만 주인공이 만날 얻어터지고 뒤통수를 맞다가 이제야 겨우 복수의 첫 단추를 끼우는 단계라니.



가장 큰 불만은 그러나 <국수의 신>에서 국수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국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드라마 중반쯤에 이를 때까지 국수는 거의 특별출연 정도에 불과했다. 아마 KBS 일일드라마 <천상의 약속>에 등장하는 PPL 위장약 카베진보다도 덜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도 등장하자마 내팽개쳐지는 서러운 팔자일 때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상하게 피범벅인 무명과 무명의 친구들보다 출연 분량 확보에 실패한 국수 한 그릇이 안타까워지고 그리워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국수야, 국수야 뭐하니?

하지만 다행히도 <국수의 신>은 극의 중반을 넘기면서 국수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엮이면서 이야기의 면발 또한 쫄깃해질 기미가 보이는 듯하다. 사실 반죽에 너무 공을 들이느라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동시간대 방송중인 SBS <딴따라>가 미친 듯이 달리지도 못하고 MBC <운빨 로맨스>의 ‘운빨’이 미심쩍은 상황에서 아직 <국수의 신>이 시청자를 사로잡을 기회는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보여줄 마지막 국수 한 그릇에서 비참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들의 인생을 우려낸 깊은 맛이 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것이고.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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