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아버지란 이름으로 탄생한 따뜻한 가족 예능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나영석 사단은 우리나라 예능업계에서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제작진이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 코미디 영화계가 감독 겸 작가 겸 제작자인 주드 애파토우를 중심으로 뭉치고 인수인계를 하면서 사단을 넓혔던 것처럼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한 불패의 tvN군단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단에서 나영석(혹은 이우정)이란 이름을 빼고 처음으로 내놓은 프로그램이 바로 <아버지와 나>다.

나영석 사단의 외연 확장은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을 마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1박2일>부터 <꽃보다 시리즈> 등을 나영석 PD와 함께하며 여행 예능에 특화된 커리어를 쌓은 최재영 작가와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의 공동 연출자였던 박희연 PD가 기획한 이 예능은 세상의 모든 부자가 그렇듯,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벌써부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소박함과 따뜻함 속에서 가족, 여행, 그리고 관계의 재조명을 풀어내는 건 나영석 사단의 정체성이다.

다 큰 아들과 아버지가 단 둘이 떠나는 어색한 여행을 쫓아다니며 관찰하는 이 프로그램은 시간을 되돌려 <꽃보다 할배>의 첫 시작을 보는 듯했다. 인물들은 새롭고 관계도 장성한 아들과 아버지라는 차별점이 있지만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에 속하는 편집, 자막, 효과음, 촬영기법과 스타일이 또 다른 ‘꽃보다’ 시리즈라고 해도 될 만큼 완벽하게 동일했다.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주조하는 스토리텔링기법은 크레디트에 이우정 작가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유려하지만 익숙했다.



그래서 새롭진 않았다. 접속사를 하나 더 써서 이야기하자면 나영석 PD 자체도 익숙함의 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니 더욱 그랬다. 추성훈과 그의 아버지 추계이의 로마 스토리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한국 가정의 일반적인 풍경인 서먹한 부자관계를 잘 그려낸 김정훈네는 <아빠를 부탁해>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의 장벽이 올라가지 않는다. 편안하고 흐뭇하게 지켜보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본연의 가치, 다른 집, 부자에 대한 궁금증은 신선함을 넘어선 끌림으로 다가왔다.

기념품 가게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런 귀여운 아버지를 제지하는 추성훈. 원조 엄친아 김정훈의 충격적인 영어회화 능력을 마주한 교장 선생님 출신 아버지가 짜증 대신 제작진 앞에서 아들을 감싸는 모습은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어려서부터 연예인으로 지내면서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본 적 없는 아들을 이해했다. 자기가 신경쓸까봐 아버지가 배고프단 말을 하지 않았다는 속내를 접한 김정훈은 사실 느끼고 있던 거라 더욱 미안해했다. 그렇게 서툴지만 가까워지는 부자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가하면 일반적인 가정의 풍경과는 조금 다른 친구 같은 부자관계를 보여준 에릭 남 부자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항상 의문을 품고 묻고, 또 책임감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양육법, 관계는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입장에 따라서는 충분히 벤치마킹할 이야기가 충분했다. 자신감을 가진 아버지, 소통을 주도하는 젊은 세대 아버지상의 반영이었다.



중년의 파이터는 관광지에서 꼭 인증샷을 남기는 아버지를 보며 투덜거리다가도,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셀카를 남기며 아버지 냄새를 맡아서 좋았다고 한다. 늘 인생의 선택 기로에서 대척점에 있던 아버지와 단 둘이 떠난다는 데 착잡함을 숨기지 못했던 김정훈은 어른다운 멋진 아버지를, 오랜만에 뵙는 친구 같은 아버지를 만나는 에릭 남은 부러운 아버지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이처럼 여러 유형의 부자 관계를 늘어놓은 옴니버스 구성은 (다른 멤버가 더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영석 사단의 여행 리얼리티에 다채로움을 주면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했다. 자칫 심심할 수도 있는 쇼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는 데다 따뜻함을 추구하는 ‘착한’ 콘셉트의 특성상 롱런 가능성과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SBS 예능으로는 모처럼 호평을 받았던 <아빠를 부탁해>가 조기 종영하게 된 것도 보여줄 그림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심하게 틀어진 것도 아니기에 가족 내의 관계 회복은 일반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호흡으로 보자면 중거리 달리기 정도다. 일상 대신 여행을 택한 것은 너무나 좋은 선택이지만, 나영석 사단의 여행이 예능 시청자들에게 조금 지친감이 있다. 기대를 어디까지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자 관계가 주는 따뜻함이 지쳐버린 시청자의 마음을 얼마나 녹여낼 수 있을까. 나영석 사단의 외연 확장 프로젝트는 이제 첫발을 내딛었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많은 이야기가 이 첫발에 달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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