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트립’의 대결이 빠트리고 있는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여행의 계절이 본격화되면서 여행예능도 부쩍 늘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토요일 밤 11시에 편성된 KBS2 <배틀트립>도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롭게 선을 보인 여행예능이다. 그런데 <배틀트립>은 다른 여행예능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라 눈에 띈다.

오늘날 여행예능은 대부분 나영석 사단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나영석 PD는 그동안 볼거리 위주로 접근했던 기존 여행 콘텐츠를 사람과 관계가 중심이 되는 정서적 콘텐츠로 바꿔놓았다. 여행의 설렘과 낭만에다가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설정을 통해 인물의 발견, 관계의 회복, 가족의 가치, 정을 나누는 따뜻함 등을 접목시키며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 덕분에 여행예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가 됐고, 이 길을 따라 예능 안에서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배틀트립>은 특이하게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정보 전달’을 내세운다. 유명 연예인이 저렴하게 떠나는 건 같지만 여행지의 매력을 최대한 소개하고 여행법을 안내하는 또다른 미션이 있다. 최저비용을 고려한 소요 경비, 맛집 탐방,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꼭 들여야 하는 관광지 안내와 엑티비티를 기본으로, 직장인이 싱가포르에 갈 때는 밤비행기를 이용하면 좋은 이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진행방향 오른쪽에 탈 것 등과 같은 여행팁이 주요 콘텐츠다. 비유하자면, 마음을 적시는 여행에세이가 대세인 시대에 기본으로 돌아가 여행 정보서를 꺼내든 셈이다.

<배틀트립>은 특정한 주제에 따라 스스로 설계한 계획대로 서로 다른 여행지를 다녀온 두 팀이 누구의 여행이 더 매력적이었는지를 놓고 방청객 투표 대결을 펼친다. 지난 2주 동안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2박 3일 해외여행’이란 타이틀로 이상민과 김일중 아나운서의 싱가포르 여행 대 김옥빈과 김현숙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대결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대결은 설정을 위한 설정일 뿐이다. 누가 더 여행을 잘해왔는지, 어디가 더 좋은 여행지인지를 가리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청자들에게 여행지를 소개하고 현실적인 팁을 소개하는 다큐에 가깝다. 혹은 여행지의 장점을 나열하는 여행사나 관광청의 홍보 영상을 보는듯하다. 여행을 놓고 ‘배틀’이 가능한 것은 바로 정보의 실용성, 여행지의 매력을 얼마나 잘 홍보하느냐가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볼거리를 선사하려다보니 너무 짧은 호흡으로 촘촘히 나열된 여행 스케줄에 동참하기가 힘들다. 다양한 여행 경험을 가진 시청자가 늘어나고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여행예능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바쁘게 돌아다니며 볼거리를 우겨넣은 지금의 보여주기 방식은 오히려 볼거리의 힘을 떨어트리는 과유불급의 결과로 나타난다.

여행에 꼭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상민과 김일중은 여행 마지막 날 “평생 기억에 남을 이틀”이라며 “돌아가면 행복하게 살자”고 외쳤다. 겉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은 김옥빈과 김현숙이 왜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여행을 통해 살짝 들려줬다. 이처럼 여행은 단순히 관광이 아닌 일상의 부족한 부분과 떨어진 에너지를 채워주는 정서적 행위다. 로망과 설렘, 그리고 위로가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런 여행의 정서적 가치가 보다 중요해지는 시대에 관광 정보에 치중한 풍성한 볼거리 위주의 구성은 여행의 정취와 여유를 느낄 틈을 부족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 시청률은 <마리텔>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올라왔지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화제성이 낮은 이유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여행을 떠나는데 용기와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호기심이 생기고, 머릿속에 각인될만한 여행의 순간을 선사할 수 있는 방향을 대결 속에 함께 녹여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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