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공심이’, 남궁민의 능청스러운 느림보 코믹 연기에 엄지 척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올 초 종영한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는 희대의 사이코패스 제벌2세 남규만(남궁민)이 등장한다. 그리고 <리멤버> 첫 회에서 탁영진(송영규) 검사는 남규만이 어떤 인간인지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

“남규만 그 놈이 돈, 권력, 다 가졌는데 딱 하나가 없어. 인간성.”

한편 최근 방영중인 SBS <미녀 공심이>에는 남궁민은 남규만과 대비되는 변호사인 안단태를 연기중이다. 안단태는 돈, 권력, 다 안 가졌는데 딱 하나만 지니고 있다. 바로 인간미다. 안타까운 사람을 위해 무료 법률자문을 해주고 대신 돈은 대리운전으로 버는 사람이 안단태다. 하지만 안단태의 이 따사로운 인간미가 쉽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주인공 공심(민아)은 안단태를 변태에 나사가 좀 느슨한 덜떨어진 인간으로 오해한다. 공심의 잘못만은 아니다.

신은 그에게 철철 넘치는 인간미와 떨어지는 새똥마저 눈으로 보고 피할 정도로 대단한 동체시력을 주었지만 멍 때리는 표정과 바보 같은 웃음을 함께 주었다. 거기다가 이름마저 안단테가 떠오르는 안단태. 그는 맨발에 조리 샌들을 신고 내딛는 걸음걸음 하나가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느릿느릿하다. 흡사 인간으로 화한 나무늘보를 보는 느낌이다.

두 드라마에서 배우 남궁민은 짧은 시간 안에 <리멤버>의 남규만과 <미녀 공심이>의 안단태라는 대비되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런데 극과 극의 인물인 남규만과 안단태 모두 비슷한 특징이 있다. 사실 <리멤버>의 남규만을 기점으로 남궁민의 연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물론 예전에도 남궁민은 어떤 드라마에서건 자기 몫은 해내는 배우였다. 하지만 좀 모범생 느낌, 주관식보다 객관식에 강한 배우 같은 느낌, 깔끔하지만 여운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배우는 사이코패스 남규만을 연기하면서부터 일부러 자신의 연기 리듬을 정박이 아닌 느린 박자로 타는 변화를 보여준다. <리멤버>에서 남규만이 섬뜩한 사이코패스로 보였던 까닭은 단순히 두 눈을 희번덕거리는 분노의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분노의 정점에 다다를 때까지 눈앞의 상대를 비웃으며 대사를 느릿느릿 내뱉으며 상황을 질질 끌 때 긴장감이 고조된 덕이다. 그런 까닭에 <리멤버>는 극이 진행될수록 남규만이 그저 일상적인 대사를 느릿느릿 뱉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장면에도 소름이 돋는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비디오테이프를 느릿느릿 재생하면 어딘지 모르게 소름 돋는 분위기가 감도는 그런.



사실 그런 까닭에 <미녀 공심이>에서 첫 장면에 안단태가 정장을 빼입고 변호사로 법정에 섰을 때도 무언가 의심스러웠다. 그의 느릿한 말투, 초점이 없는 듯 있는 멍한 눈빛에서 어딘가 남규만의 잔향이 풍겼기 때문이었다. 특히 재판을 지켜보던 초등학생 아이가 과자 하나를 떨어뜨리는 그 순간 극에는 서서히 긴장감이 감돈다. 변론이 끝난 후에 남규만, 아니 안단태는 초등학생 아이를 보고 웃은 다음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천천히 집는다. 그리고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그 순간, <리멤버>의 남규만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장면에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가 과자를 씹는 그 순간, 앞으로 저 아이의 운명 또한 아작아작 부서질 것 같은 느낌에.

그러나 알고 보면 <미녀 공심이>의 안단태는 그냥 떨어진 과자도 맛있게 주워 먹는 그런 남자다. 그리고 <미녀 공심이>를 보다보면 어느새 남규만과 엇비슷한 느린 박자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남궁민의 느릿느릿한 코믹연기 주술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미녀 공심이>는 가볍고 발랄한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에서 코믹 지분의 팔 할은 안단태다. 다른 인물들은 나름의 상처들은 있지만 다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평범한 인간들과 살아가는 한 박자 느린 나무늘보 인간 같은 안단태의 엉뚱한 면들이 바로 <미녀 공심이>를 웃기게 만드는 포인트다.



<리멤버>에서 느림의 미학으로 소름 돋게 한 남궁민이 <미녀 공심이>에서는 느림의 미학으로 배꼽 잡는 장면들을 종종 연출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의점 커피와 토스트를 프랑스 코스요리 맛보듯 감탄하며 느리게 먹는 모습, 혹은 바닥에 떨어진 고구마를 애처로운 표정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비빔국수 먹는 장면이다. 실수로 안단태의 오른팔을 다치게 한 공심은 미안한 마음에 비빔국수를 가져다준다. 안단태는 왼손으로 느릿느릿 힘들게 젓가락질하며 양념을 입가에 가득 묻힌 채 비빔국수를 입에 물고 나무늘보 인간처럼 오물거린다. 그쯤 되면 이 배우의 능청스러운 느림보 코믹 연기에 당연히 엄지 척!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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