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3시간짜리 확장판 나오면 아쉬움 사라질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십중팔구 편집자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이번 칼럼의 제목은 <남자들이 너무 많다>가 맞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박찬욱의 신작 <아가씨> 이야기다.

<아가씨> 개봉 전 사람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 여기서 ‘사람들’이란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의 팬들을 말한다. 하여간 이들이 걱정했던 건 하정우와 조진웅이 홍보물에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핑거스미스>는 재산 강탈을 목적으로 한 음모 속에서 하녀와 아가씨로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로, 워터스의 대부분 소설이 그렇듯 레즈비언 로맨스다. 당연히 두 여자들이 주인공이고 남자들은 조연이다. 그런데 홍보물의 비중을 보면 마치 하정우가 바람둥이 남자주인공이고 김민희와 김태리는 하정우의 여자들인 것 같다.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한다. 혹시 각색 중 이야기가 바뀌어 이야기가 ‘이성애화’된 것이 아닐까? 과연 충무로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성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보다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도 있었으니, 홍보팀이 이 영화의 동성애 소재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걱정해서 일종의 연막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고 그 원작을 각색한 BBC 드라마도 국내 팬이 많으니 이 정보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감독과 배우만 보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꽤 되니까 말이다.

걱정하다가 영화를 봤는데, 답은 후자 쪽에 가까웠다. 박찬욱이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이성애화’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이성애화’라는 표현은 여자들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원작소설에서는 아무래도 동성애자처럼 보였던 ‘젠틀맨’이 영화의 ‘백작’으로 옮겨지면서 너무나도 헤테로스러운 조선남자가 된 것에 ‘이성애화’를 적용한다면 말이 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다. 그 때문에 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결국 홍보를 위해서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소재의 위험성을 잊는다고 해도, 하정우는 홍보용으로 내세우기 쉬운 배우이다. 매스컴 앞에서 자연스럽고 더 대중적이며 눈에 잘 뜨인다. 김민희는 대외 이미지가 소극적인 편이고 김태리는 신인이다.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내용을 고려해보면 하정우와 조진웅이 이렇게 많이 나오고 김민희가 이렇게 눈에 뜨이지 않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로마의 휴일>에 비유한다면,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대신 사진기자로 나온 에디 앨버트가 주인공 행세를 하는 셈이다.

더 신경쓰이는 건 김민희와 김태리에게 <아가씨>는 대표작으로 남겠지만, 하정우와 조진웅에게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코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여기선 일본어의 핸디캡이 가장 크다. 왜 이들에게 굳이 일본어 대사를 많이 주었는지, 이렇게 일본어 대사가 많을 거라면 왜 차라리 일본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는지 나로서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랬다면 재미있지 않았을까? 한국어에 유창한 일본인 역을 김민희가 연기하고 일본인인 척하고 싶어하는 조선인을 일본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다. 왜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일본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에 그렇게 소극적일까? 상당히 위험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본인 역할에 쿠니무라 준을 캐스팅했던 <곡성>을 보라. 이런 역을 하려는 일본인 배우들을 찾긴 결코 어렵지 않다.)



여기엔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으니...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남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이야기가 정리되는 3부가 그렇다. 물론 박찬욱은 이 두 남자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고 그들이 나오는 장면도 노골적인 야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그 때문에 그 부분에서 두 여자주인공의 비중이 위태로울 정도로 줄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경향이다.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이런 부정적인 한국인 남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이들에게 아리아를 부를 시간을 쓸데없이 많이 주고 그 때문에 여자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버린다. 이 현상 자체도 문제지만 당연히 여자들의 이야기여야 할 <아가씨>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문제는 크다. 이런 이야기에서 야유와 조롱을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아가씨>는 상당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영화이다. 그 때문에 아쉬움과 미련이 더 크다.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 3시간짜리 확장판이 이 아쉬움을 커버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꿈꾸는 건 자유가 아니겠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아가씨>스틸컷, 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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