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들’ 고군분투하는 방송인들 모습은 눈에 밟히지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능력자들>은 하위문화인 ‘덕후’를 조명해 다양한 취향과 취미의 존재를 알리고, 무언가 열정적으로 빠져 있는 능력자들의 모습을 통해 열정과 에너지를 불어넣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덕후의 놀랍고 신기한 집념에 ‘소오름’이 돋는 걸 예능으로 변환해 전달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매주 새롭게 소개되는 덕후들의 콘텐츠와 일반 시청자들의 정서적 접점을 마련할 예능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덕후 문화를 예능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면서 퀴즈 대결과 같은 그저 그런 스튜디오형 예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시청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능력자들의 매력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이다. 이 예능은 기본적으로 능력자(덕후)라고 불리는 일반인 출연자의 콘텐츠에 의존한다. 하지만 우리는 넓고 깊고 방대한 일본의 마니아 문화와 달리, 문화적 저변이 넓지도, 깊지도, 다양하지도 못하다. 따라서 각종 시덥잖은 것들로도 대결을 펼치는 TV도쿄 [TV 챔피언]과 같은 장수 덕후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힘든 토양이다.

이번 주 능력자들은 물론, 지난주 돼지부속고기와 자전거 능력자가 그 분야를 대표하는 덕후라고 하기 곤란했다. 부속고기랑 자전거를 매우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덕후의 정서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느끼는 덕후의 매력을 가장 단순화해서 묘사하자면 전문성과 함께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서 나타나는 특유의 습성과 엉뚱함, 순수함 등이다. 해당 분야를 소개하는데 그친다면 차라리 준거집단으로라도 보일 수 있게끔 동호회를 부르는 편이 더 낫다.



두 번째 이유는 ‘덕후 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의 이해 부족이다.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를 때와 덕후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능력자들>에서는 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 분야를 소개하는 전문가처럼 다뤄진다. 사실, 덕후는 최근에 긍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약소한 조롱이 섞여 있다. 이 조롱이 전부 나쁜 의미인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부러움과 파고드는 열정에 대한 박수가 포함되어 있다. <능력자들>이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기보다 이런 덕후들의 습성을 이해하고 소위 ‘덕질’의 정서적 공감대를 중시했다면 매번 새로운 종목의 능력자가 등장해도 <마리텔>처럼 동류의식을 느끼는 커뮤니티가 됐을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스튜디오쇼 예능 포맷에 그 이유가 있다. 냉정히 말해서 <능력자들>은 동네 명물을 소개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나 <생활의 달인>과 토크쇼가 결합한 방식의 예능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 문화적 접근 부족이란 두 가지 문제가 결부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제작진의 접근 자체가 해당 분야와 특이한 사람을 소개하는 스케치에 머문다. 그러면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스튜디오쇼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이경규, 김성주, 데프콘, 은지원의 MC진에 매주 3명 이상의 연예인 패널의 가세가 그 방증이다.



지난주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황 취미 분야인 자전거를 다뤘지만 전혀 이슈가 안 될 만큼 수박겉핥기식으로 지나갔다. 왜 자전거가 유행이고 무엇이 매력인지 문답은 있었지만 전혀 그 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예인이 등장하는 <나 혼자 산다>나 스토리텔링이 있는 <자기야-백년손님>과 비교해보면 북한산 라이딩과 사이클복 고르는 정도로 능력자의 삶을 스케치한 영상이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인지도와 관심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일반인들이다. 이 부족분을 스튜디오에서 채우려고 하는데, 일반인 주인공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토크쇼가 잘 될 리가 없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김성주의 중계식 진행을 도입해 퀴즈 등 대결구도로 보편적 예능의 재미를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대결도 볼만하거나 의미가 있어야 중계가 되는 법이다.

이번 주 방송에서는 ‘유로2016’을 독점 중계하는 MBC의 예능답게 축구를 주제로 삼았다. 가수 박재정과 일반인 축구 덕후가 나와 서로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하고, 모아놓은 유니폼을 자랑했다. 축구 붐을 조성해야 할 시기에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그런데 축구 덕후들 입장에서 과연 동 시간에 벌어진 역사적 대결인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기 대신 편성된 축구 덕후 두 명을 제외하고도 MC와 패널까지 합치면 9명이나 더 마이크를 나눠가진 정체가 모호한 토크쇼에 환호했을까? 기획의 뿌리인 능력자들의 현실부터, 덕후 문화를 정서적으로 접근하려던 목표까지 다 흔들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능력자들>을 보면 신기함이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방송인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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