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히어로를 꿈꾸는 ‘38사기동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주말 새로운 드라마가 찾아왔다. 재작년 <나쁜 녀석들>의 큰 성공에 힘입은 OCN은 당시 제작진과 한정훈 작가가 다시 뭉친 <38사기동대>를 내놓았다. 19금이었던 전작의 어둡고 선혈이 낭자한 장르적 특성과 센 캐릭터를 순화한 대중적인 버전으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베테랑> 등에서 존재감을 알리고 <나쁜 녀석들>의 박웅철 역으로 ‘장비’과의 마초 코믹 캐릭터를 확립한 마동석이 전면에 나섰다. 그런 만큼 기대도 커서 채널 최초로 금토 드라마를 편성했다.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38사기동대’는 납세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38조에서 유래한 세금징수팀 ‘38기동대’의 패러디다. 법대로 일을 하다 고달파진 세금 징수 공무원 백성일(마동석)과 절친인 강력계 열혈 형사 박덕배(오만석), 사기꾼 양정도(서인국)가 비밀리에 팀을 이뤄,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법을 초월해 살아가는 악덕 체납자들에게 사기를 쳐서 세금을 징수한다는 설정이다. 마동석이 원톱으로 나선 만큼 무엇이든 로맨스로 귀결되는 한국 드라마의 법칙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그래서일까. 공중파 드라마들이 평일에는 로맨스를, 주말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 <38사기동대>는 조세평등과 정의 구현을 외친다.

본격적으로 논하기 앞서 한정훈 작가의 전작이자 같은 세계관을 지닌 <나쁜 녀석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법과 원칙만으로 처단할 수 없는 강력 범죄자들을 또 다른 강력범들이 처단해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이기도 한 김상중은 이 드라마를 통해 더욱 더 신뢰도 높은 인물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로 통쾌함이 있었다. <38사기동대>도 소재가 조세인만큼 등장인물들이 순해지고, 방식이 세련됐을 뿐 기울어진 우리 사회적 질서와 법의 테두리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마찬가지로 시스템 밖에서 한방에 해결하는 정의구현의 스토리다.



<나쁜 녀석들>에서부터 쭉 이어져 내려오는 정의구현의 세계관의 바탕에는 강자와 있는 자들의 편의를 봐주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는 우리사회의 법과 시스템이 깔려 있다. 실제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법인세 감면부터 시작해 최근의 재벌가 비리, 정운호 게이트, 홍만표 전관예우 사건 등등 공분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사건과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1,2회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검은 커넥션에 젖어 있는 세무 국장은 법을 준수하는 말 안 듣는 직원에게 실적압박과 거짓 비리로 찍어 내린다. 불법 채무자를 잡으러갔다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돈 앞에서 무력해지고 비열해지는 권력과 인간성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힘없는 게 죄가 되는 처지를 대비시킨다. 직장인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일개미고, 정치인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그 위에서 군림하는 여왕개미라고 한다. 그들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게 부족한 세수는 없는 사람들은 말 잘 들으니까 더 뜯어내면 된다고 한다. 극화되어 그렇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욱 답답했던 건 봉인된 마동석 때문이다. 불안하게 안경을 매만지는 공무원 마동석은 적응이 안 된다. 한방 친 다음 후환을 두려워하는 그런 남자일 리 없다. 살면서 예의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아무리 연출자라도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배달통에 집어넣을까 생각하는 마동석이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은 현실의 답답함을 증폭시켰다.



이런 극대화된 불편함이 38사기동대가 출범할 수밖에 없는 당위와 진정성을 만들었다. ‘센 놈한테 약하고 약한 놈한테 강한 사법 정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 분노가 인다. 마동석이 빨리 봉인을 해제하고 나서주길 바라게 된다. 세금징수 공무원을 다루면서 굳이 서원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한정훈 작가는 꼬집고자 하는 주체와 껄끄러워지는 일을 피하는 동시에 가상현실을 통해 삐뚤어진 우리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응징의 펀치를 마음껏 날릴 수 있는 링이기도 하다.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은 청량감은 현실적으로 답이 안 보이는 어려움을 한방에 분쇄해버리는 데서 나온다. 인물의 매력과 능력이 진정성과 정의를 담보한다. 조선시대라면 홍길동 류의 소설이고, 오늘날로 치면 바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국 히어로물의 세계관이다. 어차피 있는 자들을 위한 법과 사회이니만큼 해결할 방법이 안 보이는데 알렉산더가 매듭을 끊어버리듯 해결하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건강한 사회의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니지만 감정적 갈증해소에는 이만한 게 없다. 앞으로 전개될 <38사기동대>에선 바로 이 통쾌함을 기대하게 된다. 여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동석의 마초 코미디, <신세계>의 박성웅, <아저씨>의 김성오 등등 매회 등장할 카메오들은 그야말로 감초다.

케이블 채널이 드라마를 만든다면 공중파와는 달라야 한다. JTBC의 <송곳><시그널>이 우리사회의 불편한 지점들을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38사기동대>와 마동석은 이를 오락의 범주로 풀어내고자 한다. OCN과 한정훈 작가는 마동석이란 불세출의 인기 캐릭터를 통해 한국판 히어로물을 꿈꾸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OC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