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맨발로 작두를 타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섬세함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은 일부러 불편한 구두를 신고 하루를 보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발뒤꿈치는 벗겨지고 피가 배어 있다. 그녀가 그토록 힘들게 하루를 보낸 이유는 헤어진 연인 박도경(에릭) 때문이다. 불편한 구두를 신고 시간을 보내면 발에 온통 신경이 쓰여 연인에 대한 생각을 덜하게 되니까.

“당신이 생각나 조용히 무너질 때마다……아파라……아파라……더 아파라.” (오해영)

사실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일은 발에 맞지 않는 예쁜 구두를 신고 걷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사랑스럽게 웃고 있어도 발뒤꿈치는 쉽게 까지고 피가 배어 나온다. 안타깝게도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이란 예뻐 보이는 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없다. 혹은 막장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감정의 폭발만으로 쉽게 공감을 얻는 존재도 아니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은 공감과 환상을 동시에 얻어야 성공한다. 현실감 있는 연기로 보는 이의 감정이 이입됨과 동시에 여주인공의 멜로 연기를 통해 매력적인 연애물의 환상이 펼쳐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감과 환상이 동시에 만족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로맨틱코미디의 주시청자인 여성들이 갖고 있는 연애물에 대한 환상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섬세하고 복잡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연기를 잘한들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에 대한 비난과 불만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주인공의 답답한 말투, 상황에 맞지 않는 여주인공의 과한 미소, 청승과 청순 사이에 걸려 있는 표정 등등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의 흠을 잡을 구석이란 언제나 다양하니까. 거기에 여주인공은 멜로와 코믹, 심지어 <또 오해영>처럼 히스테릭한 심리드라마까지 넘나들어야 한다.



tvN <또 오해영>의 오해영을 연기한 서현진은 그러나 이런 세세한 비난조차 모두 피해갈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이 드라마를 통해 서현진은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남성들의 공감을 살 수도 있는 지점까지 보여준다. 그건 오해영이 현실감 있는 삼십대 초반 여성의 캐릭터인 동시에, 남자들의 추억 속에 있는 평범한 듯 사랑스러웠던 여자친구에 대한 잔상을 떠오르게 만드는 캐릭터라서다. 더불어 오해영의 재빠르게 오가는 수많은 감정의 조각들을 지켜보노라면 남자들은 왜 그때 나의 연인이 그토록 화를 냈는지, 왜 그녀가 내게 다시 돌아왔는지, 그리고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뭐가 더 여자한테 상처인줄을 몰라.” (오해영의 친구 희란)

이토록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매력적인 여주인공 오해영이지만 이 캐릭터는 평범한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보다 더 복잡한 인물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얼굴들이 하나의 인물 안에 겹쳐져 있어서다. 불편한 구두를 신는 것이 아니라 맨발로 작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수많은 인물들의 경계를 오가야만 이 캐릭터는 살아난다. 발 한 번 삐끗하면 인물의 매력에 깊은 상처가 난다.



<또 오해영>은 말 그대로 같은 이름의 잘 나가는 예쁜 오해영(전혜빈)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평범한 오해영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다고 내면이 비비 꼬인 존재는 아니다. 딸을 지극히 아껴주고 사랑해 준 부모님 덕에 타인을 사랑할 줄 알고 자신도 사랑할 줄 아는 긍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도경이 예쁜 오해영의 결혼으로 오해해 평범한 오해영의 결혼을 파토낸 후 그녀의 삶은 복잡해진다. 거기에 그녀가 박도경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리고 자신의 결혼을 망친 범인이 박도경이란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리고도 그 남자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서른 넘으면 되게 멋질 줄 알았어. 오피스텔 살면서 자가용 끌고 (중략) 무슨 배짱으로 당연히 그럴 줄 알았나 몰라. 사랑도 멋지게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이렇게 휘청거리기나 하고.” (오해영)

그리고 이 복잡한 이야기 안에서 오해영의 다양한 면면들이 재빠르게 튀어나온다. 평범한 삼십대 초반 여성의 모습, 유머감각 있는 발랄한 모습, 집에서 구박받는 과년한 딸의 모습, 속내를 들킬까 일부러 냉정한 가면을 쓰는 모습, 술에 취해 어리바리하게 속내를 다 털어놓는 허술한 모습, 사람들과 있을 때와 다른 홀로 있을 때의 울적한 모습, 무엇보다 사랑에 취해 기뻐하는 모습과 사랑에 갈기갈기 찢긴 모습의 극단.



더구나 드라마 <또 오해영>은 이런 여주인공 오해영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모습을 살려내는 동시에 오히려 그렇지 않은 얼굴 역시 더 극적으로 밀어붙이고 더 드러내고 더 날카롭게 몰아간다. 그리고 백지처럼 여백 있는 느낌의 배우 서현진은 이 다양한 내면의 얼굴들을 자신의 얼굴에 모두 그려낼 줄 안다.

특히 횡단보도에서 연인 박도경과 과거 자신과 파혼했던 남자 한태진(이재윤)의 싸움 장면은 이런 서현진의 강점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도경을 만나러 가는 사랑에 빠진 표정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사랑하는 남자의 싸움을 지켜보는 얼굴과, 박도경으로 완전히 마음이 기운 그 얼굴에서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의 막막한 얼굴까지 빠른 순간 안에 그 감정들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더구나 감정을 그려내는 표정만이 아니라 MBC 사극에서 기반을 다진 배우답게 서현진은 대사에 담긴 감정을 극적으로 읽어낼 줄 안다. 심지어 대사는 물론 그 사이사이에 밴 숨결에서까지 오해영의 감정이 배어나올 정도다. 아마 그 덕에 여주인공 캐릭터가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에도 보는 이들은 오해영을 오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사랑에 있어 끝까지 가는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우리 내면 어딘가에 늘 오해영이 있다는 걸 오해하지 않게 설득해낸 서현진 덕에 말이다.

“누군가에겐 죽을 만큼 좋은 사랑이, 누군가에겐 죽을 만큼의 상처,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내 사랑이 더 애틋하다.” (오해영)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