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그래 이게 인생이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노희경 작가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화 한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기대감이 든 건 사실이었다. 전작들을 보았을 때 그녀만큼 노년의 삶에 대해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더라도 어느덧 종영이 가까워진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기대 이상의 성취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한다. 그건 김수현 드라마의 대가족 클리셰인 큰방을 차지한 지혜로운 어르신 이야기일 수도 있다. 혹은 수많은 일일드라마에 등장하듯 며느리들을 콩 볶듯 볶아대는 시어머니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영화 <은교>에서처럼 ‘할배파탈’의 젊음에 대한 에로틱한 욕망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흔히 떠오르는 장면은 인생의 저물녘에 접어든 백발에 주름지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초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노인의 삶이나 인생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65세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의심스러워도 지금 현재의 상상력만으로 늙은이의 삶이 어떨지는 다 안다고 믿는다. 물론 그 속내는 늙어가는 이들의 삶을 외면하길 바라는 것이겠지만. 젊은이나 젊음을 동경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늙음이란 무언가 알고 싶지 않은 시절의 기록인 것이다.

<디마프>는 첫 화에서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소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소제목을 한여름 부침개 뒤집듯 뒤집으며 흘러가는 것이 <디마프>의 묘미다.

<디마프>는 초등학교 동문이면서 지금껏 함께 우정을 이어온 노인들의 이야기다. 칠십 대 초반인 희자(김혜자)와 정아(나문희)는 절친이다. 여전히 꽃을 보면 미소 짓는 소녀 같은 희자는 남편을 잃은 뒤 홀로 살아가고 있고 우리네 평범한 늙은 엄마인 정아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늙은 아빠 석균(신구)의 아내다. 육십 대의 동갑으로는 남편과 헤어진 난희(고두심)와 영원(박원숙)이 있다. 각각 대박 짬뽕집 사장과 여배우의 삶을 사는 두 사람은 한때 죽고 못 사는 사이였으나 오해로 인해 원수로 변해 있다.



그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며 무언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냉정한 중간추 역할을 하는 충남(윤여정)이 있다. 아흔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강단은 대단한 난희의 엄마 쌍분(김영옥)은 이 친구들 모두의 엄마이자 큰언니이다. 한편 이 우정의 울타리 바깥에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 같은 콜라텍 웨이터 기자(남능미)도 있다.

난희의 딸인 박완(고현정)은 이 많은 이들을 이모라 부르며 어쩌다 가끔 이들을 어르신으로 떠받들기는 한다. 허나 그보다는 친구처럼 대하거나 종종 화가 나면 원수나 귀찮은 짐짝처럼 여길 때도 있다. 물론 얼굴에 불만만 가득할 뿐 결국 늘 궂은일은 도맡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박완의 내레이션을 기반으로 이 이모들 각각의 사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 속 황혼의 인물들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새로운 삶을 꿈꾸고, 현실의 삶에서 갈등하고, 미래의 삶을 두려워한다.



풍성한 이야깃감과 빠른 흐름이 씨줄 날줄로 엮이고 각각의 캐릭터를 맡은 중견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면서 <디마프>는 젊은 연인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사랑이야기만 하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흘러간다. 과거의 그녀가 어떻게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고, 또 황혼에 접어든 이들이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벗어나려 애쓰는지 <디마프>는 오롯이 담아낸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황혼의 연애담은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달콤하지도 않다. 그건 그냥 집 앞 공원의 벤치처럼 편안하게 하지만 조금 다른 기분으로 쉴 수 있는 여유에 가깝다. 아니면 연애의 장점이 이런 식이거나.

“연애하면 치매예방도 된대.” (영원)

생각보다 경쾌한 흐름의 이 드라마는 그런데 쿡쿡 터지는 웃음을 주다가도 보는 이를 멈칫하게 만든다. 서서히 밀려들어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쥐는 먹먹한 순간들 때문이다.



평범한 우리네 엄마 같은 칠십 대의 정아가 자신의 엄마를 죽음의 세계로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평생을 가족한테 거들먹거린 초라한 가부장 석균이 아내의 가출로 자신의 잘못들을 서서히 곱씹을 때. 암에 걸린 여배우 영원이 가발을 벗고 초라해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때. 고층빌딩의 옥상에 올라가 화려한 도심을 내려다보며 “죽기 딱 좋다.”라는 혼잣말을 했다가 잠시 후 “떨어지다 밑에 사람과 부딪치면 다칠라”라고 읊조리고 다시 옥상에서 내려와 핸드백 안에 넣어둔 곰보빵을 꺼내 씹는 희자의 얼굴에서. 남편의 외도로 자살을 마음먹고 어린 딸에게 먼저 농약 든 요구르트를 먹였던 엄마와 그 딸이 어른이 된 후 그 사건을 캐물으며 엄마를 다시 몰아붙이는 장면에서. 엄마와 딸은 젊을 때는 원수 같지만 죽을 때나 되어야 화해가 되고 엄마가 좋아진다는 충남의 말을 들을 때. 인생의 많은 상처들을 맨발로 꿋꿋이 견뎌왔던 백발의 그녀들이 결국 황혼에서 암과 치매라는 질병 앞에 무너질 때.

이처럼 <디마프>는 황혼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희로애락을 한 자 한 자 짚어낸다. 그 순간 이 드라마는 노년의 삶을 다룬 이야기에서 지금의 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함께 늙어갈 내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혀 나간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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