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싱글’, 예의 없는 포장과 더 실속 없는 내용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종종 한국 영화 홍보 담당자들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떻게 이해가 가더라도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예를 들어 박찬욱의 <아가씨>에서 조연급인 남자 배우들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은 머리론 이해가 가능하다. 120억을 투자했으니 대놓고 동성애 영화라고 홍보하는 건 두려웠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의 홍보물이 두 주인공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은폐하고 있는 건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 관객들을 오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해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영화 <굿바이 싱글>의 시사회를 보고 나오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예고편만 보면 이 영화는 인기배우인 김혜수의 캐릭터 주연과 스타일리스트인 마동석의 캐릭터 평구의 관계를 다룬 코미디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혜수의 진짜 상대는 임신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인 김현수의 캐릭터 단지이다. 마동석의 캐릭터 평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얼마든지 다른 캐릭터로 대체가 가능하고 맘만 먹으면 없앨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가 빠지면 이야기의 진행이 안 된다. 누군가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포스터나 스틸을 보면 김현수와 단지는 존재 자체가 은폐되어 있다. 김현수는 기자 시사회의 간담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게 스포일러이냐. 그것도 아니다. 오프닝 크레디트만 봐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환히 보이는 영화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예를 들어 청소년 임신 이슈를 대놓고 끄집어 내기 두려워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진짜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그러나 홍보물의 은폐보다 단지가 충분히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기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김현수는 좋은 배우이고 이 영화에서도 잘 했고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김현수에게 연기할 거리를 그렇게 많이 주고 있지 않다. 단지는 실수를 저질렀고 재능 있고 예쁘고 착하고 억울하다. 영화를 보면 그게 전부인 것 같다. 임신한 중학생이 모두 불량소녀라는 법은 없다. 관객의 공감을 얻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면 이보다 더 분명한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문제점은 이야기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홍보물이 이 영화를 철없는 인기스타의 소동극으로 몰아가려고 해도, <굿바이 싱글>은 청소년 임신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당사자에게 공감하고 그 사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캐릭터의 내면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그냥 이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너무 밉상으로 보이지 않길 바라면서 최대한 안전하게만 처리하려 한다. 그 결과 단지는 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면적이고 예쁜 캐릭터로만 남으며 그 설정이 품고 있던 드라마의 가능성 대부분은 날아가 버린다. 대상화된 캐릭터의 한계이다. 그 결과 영화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실세계에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1인극 소동을 벌이며 그 빈 칸을 채워야 한다.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관객들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이야기를 짜면 결국 최종결과물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기만적인 홍보물이야 작품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소재와 주제의 가능성을 제대로 파지 않는다면 이건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굿바이 싱글>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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