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연애 배제한 과감한 도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안방극장에 장르물이 쏟아지고 있다. 여름 시즌 특수인지 새로운 엘도라도를 찾아 떠난 모험인지 알 수 없지만 공중파 채널에서만 ‘본격’ 장르물이 3편이나 같은 시기에 편성됐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드라마는 가장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SBS <원티드>다. 톱 배우가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범인이 요구하는 대로 리얼리티쇼를 진행한다는 일종의 스릴러로,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영국의 좀비물 <데드셋>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시도된 바 없는 설정이다.

<원티드>는 국내 최고 여배우 정혜인(김아중)의 아들이 촬영장에서 납치되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범인은 아들을 찾고 싶으면 생방송 리얼리티 쇼를 만들고 자신의 내건 미션을 수행하라고 협박한다. 이에 너무 잘나서 퇴물이 되기 일보직전인 스타PD 신동욱(엄태웅)과 드림팀을 꾸리고 남편이 사장으로 있는 케이블 방송사에 편성을 받는다. 범인이 내건 미션은 두 가지다. 시청률 20%를 무조건 넘길 것, 매회 새로운 미션을 해결할 것. 여기에 열혈 형사 차승인(지현우)이 추적하던 납치된 인터넷 BJ 이지은이 이 사건과 엮이면서 비로소 톱니는 완벽하게 돌아간다.

<원티드>는 최근 시작된 공중파 장르물 중 가장 장르적 법칙과 서스펜스를 앞세운 정공법으로 승부를 본다. 우선 장르물에 늘 등장하는 괴팍한 천재과 남자가 둘이나 존재한다. 다정함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미는 전혀 없지만 자신의 분야에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방송만 생각하는 비정한 PD 신동욱과 범인 잡는 데는 최고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형사 차승인. 신동욱은 정혜인과 과거가 있어 보이고, 차승인은 아들을 찾아줄 가장 능력 있는 남자고 누구나 매력을 느낄 만큼 듬직한 구석이 있지만 아들을 잃어버린 여주인공의 모정 앞에서 로맨스가 먼저 끼어들 일은 없어 보인다.



로맨스에서의 자유로움은 <원티드>가 그동안 우리나라 장르물에 채워진 족쇄에서 풀려났음을 의미한다. <원티드>는 유괴범을 찾다 연애를 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각본, 연출가와 시청자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르고, 매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이 있다. 시청자들은 큰 틀에서 범인의 존재와 범죄 의도를 추리하게 되고 매회 주어지는 미션을 해결해가는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함께 고비를 맞이하고 위기를 넘어선다.

행동동기가 명확히 설명되는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원티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와 욕망을 품고 있어 사건 진행 방향을 더욱 더 쉽게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극 중 <원티드> 제작팀 멤버들, 무조건 범인을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차승인의 배경 외에도 방송사 사장이자 정혜인의 남편인 송 사장, 매니저, BJ 이지은, 차승인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동료 형사, 연예지 기자 등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모두 다 사건과 관련된 열쇠를 한 개씩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살했던 스토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처럼 비밀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한 엑스트라들도 눈에 밟힌다.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복잡해지던 이야기는 지난 4회, 프로파일러 역을 맡은 김선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가닥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 시스템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아동 관련 범죄자들을 정혜인과 방송의 힘으로 공개 처형하려는 범인의 의도가 어렴풋이나마 밝혀졌다. 혼돈 속으로만 빠져가던 이야기는 드디어 피아의 구분과 큰 틀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장르물이기에 갖는 몰입의 어려움은 이제 한 겹 벗었다.

우리에게 장르물은 어려운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하다. 전형적인 면모, 익숙한 스토리를 비트는 데서 장르적 즐거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닥터스>는 메디컬장르라는 설명 앞에 굳이 ‘휴먼’을 슬쩍 끼워 넣는다. 그래서인지 모든 극중 인물들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짝사랑이 굳어서 악녀가 되고, 4명의 남녀 배우들이 사랑의 이어달리기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 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할머니를 잃은 복수를 위해 슈퍼히어로급 의사가 된 박신혜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매우 명확하다. 뻔한 건 식상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익숙해서 빠져들기 쉽다는 대중성은 큰 장점이다. 프로레슬링 각본처럼 선악이 구분된 세계에선 큰 고민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티드>는 김아중, 엄태웅, 지현우, 정혜인 등등 각각 명암을 가진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과거와 욕망이 새롭게 드러나고 생각도 못한 곳에서 부딪히면서 이야기의 향배를 쉽게 짐작하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마음 놓고 누군가에게 몰입하기도 힘들다. 바로 이런 실타래들을 곳곳에 심어놓았다는 점이 <원티드>가 단순히 흉내만 낸 장르물이 아닌 증거다.

우리는 그동안 평면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스토리의 짜임새로 승부하는 장르물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자, 어차피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든 로맨스로 귀결되는 드라마가 대다수인 이유다. 장르물은 스토리의 재미를 즐기는 반면, 우리네 드라마들은 이야기는 뻔하더라도 그 속에 깃든 판타지를 재밌게 꾸리는 데 특화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원티드>는 로맨스와 코미디의 도움 없이, 스토리의 재미만으로 승부를 보는 과감한 도전을 했다. 공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이 용기는 <시그널>의 사례처럼 우리 드라마의 다양성을 더욱 넓힐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격동의 수목 드라마 전쟁에서 <원티드>의 선전을 응원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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