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쓰, 누구도 밟지 못한 신경지 앞에서 더 즐겨도 좋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나비처럼 날아오른 ‘언니쓰’가 호쾌한 슬램덩크를 찍었다. 지난 금요일 새벽 음원 1위로 데뷔, 오후에 <뮤직뱅크> 출연, 늦은 밤엔 <언니들의 슬램덩크> 본방송까지, 이번 주말은 언니쓰의 시간이었다. <무한도전><나는 가수다>를 비롯해 동시간대 맞붙고 있는 <쇼미더머니5> 등등 예능기획 음원의 호조야 이제 당연한 시장 반응이지만 어느덧 금요일 심야 시간에서 7%대를 넘긴 시청률과 끊이지 않는 화제성은 언니쓰의 성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5년은 다양성 측면에서 예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해였다. 따라서 이 칼럼에서도 물론이요, 많은 이들이 올해는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재미를 찾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여성 예능(인)의 도약이었다. 하지만 2016년의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 작년의 실험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경색되었다.

여성 예능이라며 탄생한 <언니들의 슬램덩크>도 특색 있는 콘텐츠나 공감대 없이 철지난 리얼버라이어티를 흉내 내는 기존 여성 예능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딱히 시청자들이 몰입하기도 힘들고 다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를 그리기도 애매한 대형 면허 획득이나 그간 예능에서 수도 없이 봐온 번지 점프에 도전하며 흘리는 눈물 등이 이어지며 작전타임이 시급해보였다.

언니쓰를 결성하게 만든 민효린의 꿈도 조금 뻔했다. 한계를 넘어서서 꿈의 무대를 펼친다는 성장 스토리는 너무나 많이 본 이야기다. 수많은 성장 영화나 <무한도전>의 예는 차치하더라도 박칼린이란 혹독하고도 능력 있는 리더의 지휘 아래 오합지졸들이 하나로 뭉쳐서 감동을 선사한 <남자의 자격> ‘합창단 특집’의 걸그룹 버전이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인데다 실제 인생을 건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들이 활발히 제작되는 오늘날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뻔한 스토리에 반응했다. 막연한 꿈만 갖고 있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멤버들의 성장기에 몰입했던 것처럼 걸그룹의 이미지와 거리가 먼 라미란, 김숙과 노래와 춤이 모두 안 되는 홍진경, 실력부족으로 걸그룹 데뷔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민효린이 박진영의 지도하에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해 하나의 팀으로 완성돼 가는 그림에 빠져들었다. 노래라는 직관적 콘텐츠가 가진 힘과 대형 기획사의 트레이닝 과정이란 볼거리는 그동안 경험한 서바이벌쇼 덕분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제시와 티파니 등 기존 가수들도 열심히 참여하며 진정성을 높였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의 꿈을 갖고 멤버들이 뭉치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언니쓰 활동으로 인해 <언니들의 슬램덩크> 멤버들은 리얼버라이어티의 근간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톱니처럼 하나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익숙함과 함께 언니쓰에 쏟아지는 반응 중에서 가장 눈여겨볼 특이점은 여성 시청자들의 남다른 관심과 응원이다. 음원이 발표된 직후 포털사이트의 여러 여초 카페와 게시판에서 반응이 가장 먼저, 그리고 뜨겁게 올라왔다. 그동안 여성 예능이 삼촌팬들의 시선과 관심을 방송에 투영하기 위해 애썼지만 이 걸그룹 프로젝트는 여성들의 공감대와 호감을 사는 쪽으로 진행됐다.



자신감에 찬 라미란과 김숙은 멋진 언니의 롤모델이었고, 홍진경은 성공한 사업가, 망가지는 예능인 등의 겉보기와 달리 많은 여성들이 겪는 현실적 고민을 품고 있었다. 싹싹하고 사랑스러운 티파니는 친해지고 싶은 예쁜 동생, 민효린은 귀엽고 엉뚱한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자유분방한 제시는 걸크러쉬의 간판이었다. 이렇게 각자 본인만의 개성을 확실히 갖춘 캐릭터가 확립됐고, 이 캐릭터들은 여성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다. 기존 여성 예능이 이루지 못했던 대단한 성과다.

물론, 성장스토리는 목련꽃과 같다. 확실한 기승전결이 있고, 너무 끌면 뜨거웠던 만큼 구차해진다. <남자의 자격>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끌어올렸다가 다시 바닥까지 떨어지게 만든 합창단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하지만 언니쓰의 경우 <뮤직뱅크> 무대는 성장 스토리의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다.

좌충우돌을 겪던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언니쓰를 시작하면서 현재 방영중인 모든 예능을 통틀어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화려한 순간에 멋지게 떠나거나 완만하게 내려갈 일을 고민해야 하지만 지금은 성장 그래프의 초기 단계다. 이제 겨우 캐릭터가 잡히고, 그 캐릭터들이 각자 맡은 바를 갖고 굴러가는 하나의 팀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연착륙을 위한 다음 숙제를 고민하기보다 축제를 즐기며 가속도를 높일 때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세를 이어가 여성 예능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곳까지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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