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혹시 20년 후 ‘가요무대’의 미리보기 아니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그리웠던 그 목소리 보고팠던 그 얼굴들/오늘 여기 다시 모였네 반가움의 꽃 피었네/ 정다웠던 그 노래 다시 듣고 싶던 그 노래/우리 모두 마음껏 손뼉 치며 노래 부르자/추억 속에 정든 그 노래 다시 불러보는 이 시간/얼굴마다 기쁨이 가득 가슴마다 행복이 가득”

198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30년 넘게 월요일 심야프로의 강자인 한 음악프로의 시그널송이다. 그런데 종영을 앞둔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이 노래의 가사와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슈가맨>은 초기에 원히트원더 가수들을 공개하고 그들의 노래를 트렌드에 맞는 음악으로 재편곡한 역주행송을 쇼맨들이 다시 들려주는 예능프로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라진 가수들이 무대 위에 하나둘 등장해 그들의 히트곡을 부르고, 그 노래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머릿속에 맴도는 순간이 찾아왔다. 마치 우리들 머릿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기억의 되돌려 감기 버튼을 시간의 손이 슬며시 누른 것처럼.

그건 1980년대 어느 추운 겨울밤 두툼한 이불 속에 숨어서 MBC F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공개방송에서 <아마도 그건>을 부르던 최용준의 애절한 미성을 들었던 기억일 수도 있다. 혹은 짝사랑하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등하굣길에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고 뱅크 1집의 <가질 수 없는 너>를 되돌려 감기하던 순간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스페이스A의 <섹시한 남자>나 루머스의 <스톰>이 나오는 순간 나이트클럽의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던 순간의 짜릿함이거나. 아니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리즈의 <그댄 행복에 살텐데>를 배경음악으로 깔거나 노래방에서 첫 곡으로 친구와 함께 이지의 <응급실>을 부르던 때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살아나는 순간이기도하다.



대중음악은 시간이 지나면 흘러간 가요로 잊히지만 동시에 지난 시대의 배경음악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사랑하고, 힘들어하고, 무너지고, 일어서던 ‘나’란 사람의 배경음악이기도하다. 그렇기에 <슈가맨>에서 추억의 가수와 잊혔던 추억의 노래를 다시 들을 때 지난 시절의 배경음악과 함께 추억이 돌아오는 그 지점에선 누구나 ‘왈칵’의 감정을 느낄 법도하다. 그 순간 <슈가맨>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고단하고 반짝였지만 지금은 어느새 잊고 있던 과거의 젊은 나 ‘슈가맨’과 잠시 만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슈가맨>을 보고 있노라면 20년 후의 <가요무대>가 궁금해진다. 사실 우리가 본 <슈가맨>은 20년 후 <가요무대> 스타일 음악방송의 ‘미리보기’는 아니었을까? 아마 20년 후의 <가요무대>는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지금의 점잖은 <가요무대>나 포크음악, 그룹사운드 스타일의 음악으로 교련복 세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콘서트7080>과는 달라질 것 같다.

오히려 추억 속 <가요톱텐>이나 <생방송 TV가요20> 같은 포맷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20년 후의 <가요무대>에는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에 10대를 보낸 이들을 위해 이문세나 신승훈 같은 발라드 가수들도 여전히 그들의 히트곡을 부를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우리는 이문세가 부르는 “어디로 갔을까 사랑하던 슬픈 그대 얼굴” <붉은 노을>이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그리움 때문일 거야”를 애수에 찬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년 후의 <가요무대>는 1990년대의 음악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와 인연이 깊은 박남정과 현진영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댄스뮤직과 랩 음악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폭발한 1990년대 말이다. 아마 20년 후의 <가요무대>에는 백댄서들의 격렬한 랩과 안무에 맞춰 자신의 노래를 ‘립싱크’하는 1990년대 댄스가수들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쇼프로그램의 ‘립싱크’가 20년 후에는 어쩌면 추억을 소환하는 장치로 느껴질지도 모를 테니까. 아니면 현재 KBS <불후의 명곡> 콘셉처럼 당대의 스타들이 과거의 신나는 댄스곡을 부를 수도 있겠다.

그 무렵 환갑을 훌쩍 넘겼을 <슈가맨>의 MC 유재석과 유희열도 이미자 남진의 <가요무대>가 아닌 박정현 젝스키스의 <가요무대>와는 꽤 괜찮은 조합 아닐까? 물론 <슈가맨>에서 보여준 몇몇 역주행송처럼 원곡에 대한 추억마저 저 멀리 역주행 시키는 과한 편곡은 20년 후에도 피했으면 좋겠지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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