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 이경규는 지금처럼 계속 통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예능 <라디오스타>는 더 이상 B급 문화를 향유하는 작은 토크쇼가 아니라 대형 확성기다. 이런 10년차 토크쇼 <라디오스타>와 36년째 활약하는 예능대부 이경규가 만났다. 김구라를 필두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토크쇼에 ‘욱’과 ‘버럭’으로 예능을 경영하는 이경규(와 그의 패밀리)가 출연한다니 기대가 컸다. 섭외단계에서부터 2주 편성을 기획한듯하고, 방송 후 뉴스 등의 반응은 ‘킹경규’라는 찬양 일색이다.

그런데 이번 <라스>를 보면서 ‘이제 그만’이라는 직언을 올리고 싶어졌다. 이경규가 환기에 성공한 건 맞지만 과소비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어디서 감지했는지 이야기하기 위해 언제부터 이경규가 기대를 갖게 만드는 ‘패널’이 됐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세월의 변화 속에 밀려나던 이경규는 지난 1월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예능 시청자들 곁으로 다시 다가왔다. 지난 4월 공중파 예능 중 가장 젊은 감각을 지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돗자리를 깔면서 오히려 그전엔 맺어본 적 없는 유대까지 갖게 됐다. 작년부터 보여주기 시작한 아빠나 이웃 아저씨처럼 편하고 친근한 인간적인 면모, 36년간 정상 근처에 있었던 커리어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은 그의 욱하는 캐릭터를 새롭고 의미 있게 새 단장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오랫동안 정상급 방송인으로 봐왔던 이경규가 일상적이고 편안한 아저씨로 다가오니 재밌고 친해지고 싶은 거다.

이는 곳 예능 대부의 우상화 작업으로 이어졌다. 우리 대중문화가 발전하고 역사가 쌓이면서 레전드 스토리텔링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층 깊어진 아이돌 계보, 수많은 음악예능들을 통한 과거 명곡 및 가수의 재발견, 복고 열풍 등 지난 세월을 단순히 낡고 타파할 것이 아니라, 재조명하고 먼지를 털어내서 가치를 부각하는 작업을 통해 콘텐츠가 생산되는 것이다. 지난 36년간 예능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경규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상급 예능인으로 걸어왔던 길은 지금 예능대부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레드카펫이 됐고, 그의 버럭, 욱하는 성미, 예능이 리얼버라이어티화 되면서 변화된 제작환경 속에서 제작진과 빚었던 이런저런 트러블은 젊은 세대들에게 비정형의 코미디가 됐다.



그런데 이번 <라스>는 한창 열을 오리고 있는 이경규의 레전드 스토리텔링 작업에 잠시 멈춤 신호를 줘야 한다는 사인으로 다가왔다. 방송가에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격언이 있긴 하지만 때로는 바람을 탔으면 잠시 노를 놓고 그 바람 속도로만 천천히 갈 필요도 있다.

이경규와 그 패밀리가 내세운 코미디는 패턴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왕적 관계구도 속에서 이경규와 그의 주변인물들이 수직적 관계가 주는 갈등과 에피소드가 전부다. 이런 수직 관계를 코미디 코드로 삼아 주변인들이 이경규를 추켜세운다. 이경규 본인도 가끔 민망해하는 가운데 적당히 망가지면서 본인 위주의 방송을 즐겼다. 일종의 예능 대부를 정점에 세운 패거리 문화인데 사회적으로는 권장하지 않는 구태다. 이런 점들이 한두 번 웃음으로 승화될 수는 있지만, 김구라가 말한 대로 북한에서 봄직한 관계다. ‘대부’에 서로서로 충성하려는 그림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코미디다. 우리나라 문화의 씁쓸함도 살짝 풍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신이라 할 만한 동료들과 함께 나오면서 이경규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경규가 트렌드와 부합되지 않았던 지극히 권위적이기만 했던, 면들을 떠올릴 여지를 남겼다.

물론, 진지하고 심각하게 이경규라는 권력과 권위가 만든 독재 체제에 모인 계급적 관계와 독재를 정색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잠시 숨을 고르고 가야 할 때라고 제안해본다. 용비어천가는 쉽게 질린다. 이경규의 말대로 방송 타켓 시청자의 연령대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금 이경규가 다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2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다. 그리고 이 친근함은 긴 세월동안 공고히 다져진 캐릭터와 화려한 시절을 조금 내려놓으면서 왔다.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는 20~30대가 그와 그의 버럭 개그를 새롭게 보기 때문이라는 걸 혹시나 잊어서는 안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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